대부분 대학에서 시행중인 재수강제도 ‘학점 인플레’ 유발한다는 비판 제기돼
개별 대학이 폐지하기는 힘든 구조… 재학습 순기능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지난 11일(화) 연세대가 재수강 제도를 폐지해 ‘학점 인플레’를 잡기로 했다는 기사가 한 일간지에 보도됐다.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자 연세대 측이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한발 물러서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재수강 제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학신문』은 재수강 제도의 현황과 그를 둘러싼 논란을 진단해봤다.

서울시 13개 대학 재수강 제도 현황

논란의 중심에 선 재수강 제도는 자신이 수강했던 과목의 학점이 각 학교에서 정한 기준 아래일 경우 다시 수강해 새로운 학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현재 서울 내 대다수 대학의 경우가 이러한 재수강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재수강 가능 학점 기준, 재수강시 받을 수 있는 학점 상한선, 학기별 재수강을 할 수 있는 학점 제한 등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재수강 가능 학점 기준의 경우 대부분 학교에서 C+ 이하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립대의 경우는 B학점을 맞아도 재수강을 할 수 있고 경희대의 경우는 재수강 가능 학점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A를 맞아도 A+를 맞기 위해 재수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1222@snu.kr


일부 대학들은 재수강을 할 시 받을 수 있는 학점의 상한선을 두기도 한다. 서울대를 비롯해 경희대, 외대는 이러한 상한선이 없지만 상당수 대학에서 B+, A-, A 등의 상한선을 두고 있다. 상한선이 없는 대학의 경우도 단과대의 재량에 따라 개별적으로 상한선을 두기도 한다. 일례로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의 경우 재수강시 학점을 최대 B+까지만 받을 수 있다는 항목이 내규에 명시돼있다. 성균관대,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의 경우 한 학기에 재수강을 신청할 수 있는 학점에 제한을 두고 있다.

재수강 제도와 유사하게 일부 학교들은 학점포기제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미 이수한 과목 중 일부 학점을 포기해 학사 기록에서 삭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희대 6학기 이상, 성균관대 7학기 이상 등, 대부분의 학교들은 정해진 학기 이상을 등록한 학생에 한해 학점포기의 기회를 준다. 경희대의 경우 학기 제한이 없어 1학년도 자신이 원하면 학점 포기를 신청할 수 있다. 학점 포기를 신청할 수 있는 학점의 경우도 각 학교별로 6학점, 12학점, 무제한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재수강 제도를 둘러싼 논란

재수강 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측의 가장 주된 논리는 재수강 제도가 현재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학점 인플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학점 인플레’의 경우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의 182개 4년제 대학 평균학점 자료에 따르면 졸업생의 89.4퍼센트가 평균 학점이 B 이상이다. 재수강 제도 하에서 학생들은 학점이 낮게 나온 경우 수업을 다시 들어, 보다 나은 학점을 받는 이른바 ‘학점 세탁’을 하기 때문이다. ‘학점 인플레’는 대학 성적에 대한 신뢰도 저하와 초과 학기 학생들의 증가와 같은 문제들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지난 4일 삼성 ‘열정락서’ 콘서트에서 원기찬 인사팀장(53)은 “현재 대학에서 ‘스펙 쌓기’ 때문에 학점 따기 쉬운 과목만 듣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는 입사 지원 자격인 학점 평균 3.0 ‘허들’만 넘으면, 학점은 당락에 영향이 없다”고 말해 기업이 학점에 대해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실제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데 있어서 학점 영향력을 낮추는 회사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초과 학기를 듣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것도 결국 위의 두 가지 제도에 의한 학점 인플레가 학내에 만연한 것에 연유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모씨(서울대 인문계열1·12)는 “재수강이라는 제도가 명목적으로는 학생의 권리이지만 학점 인플레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재수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에 따라 초과 학기를 다니는 학생들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초과 학기 학생들이 많아지면 가계 등록금 지출이 늘어나고 노동진입 연령이 늦어지는 사회적 비용 발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수강 제도가 ‘학점 인플레’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K모씨(고려대 환경보건학과·11)는 “재수강을 할 경우 시간과 노력이 두 배로 들어 학생들은 학점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재수강을 하지는 않는다”며 “정규 학기 때 수업을 많이 듣거나 계절학기에도 수업을 들을 수 있어 단순히 재수강 제도가 초과학기를 유발한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재수강 제도 폐지가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D모씨(연세대 교육학과·12)는 “재수강 제도가 초수강자들에게 피해가 가고, 학생들이 수업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등의 문제점은 있다”면서도 “그러나 재수강 제도 폐지에 있어서 소급 적용과 학교 간의 차이 등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나아가 재수강 제도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초수강 당시 수업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재수강을 통해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업을 듣지 못한 학생들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L모씨(고려대 일어일문학과·08)는 “건강이나 가정문제 등으로 수업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학점 인플레’를 이유로 재수강을 원천 금지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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