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학 저변
우리의 과학 저변
  • 대학신문
  • 승인 2012.09.23 0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IT 강국이다. 우리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압도적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 점만 보면 과학 분야에서도 노벨상이 나올 법 하다. 그래서인지 언론에서는 10년 안에 우리 과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을 예측하기도 한다. 필자는 노벨수상자의 제자, 또 작년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된 교수의 연구실에서 포닥 연구원 생활을 한 사람으로 위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 이쯤 해서 한국의 과학 저변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지난 십 년간 우리는 스포츠에서 한국인 스타들의 탄생을 봐왔다. 박찬호, 박세리, 박태환, 김연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깜짝 스타들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고, 큰 대회에서의 승리에 온 국민들이 열광했다. 그럼 한국은 위 종목 세계 최고인가? 여자 골프를 제외하고 ‘절대 아니다’가 정답이다. 한 명의 금메달 선수는 있으나 그 이후의 후계자들은 아직 없다. 즉 몇 년 안에 국제무대에서 한국은 없어진다. 이는 그 분야의 저변이 약함을 의미한다. 과학계도 마찬가지이다. 노벨상은 개인이 받는 것이나 그 국가, 대학, 교육, 정책 등의 뒷받침이 필수인 종합적 저변이 튼튼해야 나온다. 스포츠 스타들은 어린 시절 특출한 재능을 보여주며 최정상까지 오르는 데 10년 내외가 걸린다. 주변 환경이 좋지 않아도 간혹 스타 탄생이라는 이변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학자는 어린 시절 재능 확인 후 노벨상 수상까지 최소 50년이 걸린다. 그 긴 세월 동안 주위 환경(저변)이 계속 지원을 해줘야지만 비로소 빠르면 50세에, 늦으면 70세에 수상을 하게 된다(10년 지원과 50년 지원은 확률적으로 매우 큰 차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학 저변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초·중·고교를 살펴보자. 현 입시체제에서 과학을 즐기며 좋아하는 예비과학자가 생존하기는 매우 어렵고 이 체제가 그들의 재능을 살려줄 확률은 적다. 대학은 어떤가? 지난 4년여 동안의 교수직을 통해 느낀 점은 정부나 대학 본부의 정책은 과학 저변 확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 과학계의 태풍이라 할 수 있는 기초과학원(IBS)은 한정된 과학 연구 예산을 선택된 소수에게 집중 투자하는 기업의 단기 생존 법칙과 동일하게 운영된다. 장기적 시각이 필수인 과학이지만 단기 실적에만 투자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앞으로 줄어든 개인 연구비가 연구역량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우려한다. 본부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표방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명백한 학부 중심 대학이다(물론 예전보다는 중심추가 대학원으로 꽤 옮겨졌다).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과학비즈니스벨트(IBS의 전신)의 선정과정에서 지자체 고위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단식 투쟁에 혈서까지 쓰면서 유치에 힘썼고 그 모습에 “정말 이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나?”하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역시나 우리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설 뿐 아니라 역사, 문화적 배경으로 볼 때,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과학에는 무관심한 경향이 큰 나라이다. 결론으로 우리들의 평균 과학적 사고력과 관심도는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친다.


 교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 하락, 학생들에게도 떨어진 교권(요즘은 차라리 학생들이 학내에 붙어있는 학원들의 명강사 선전 홍보에 더 눈길을 주는 듯하다), 국가와 본부의 과학/연구에 대한 장기적 비전 부재 등은 우리들을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총체적 악조건 상황에서 우리 과학자들에게는 어떤 희망이나 낙이 남아있을까? 국민 평균에서는 좀 뒤질지나 정규 분포에서 항상 존재하는 소수의 미래 예비 과학자인 학생들을(위의 스포츠 스타들 같은) 관악에서 만나 그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토의하며 연구의 묘미를 심어주어 과학자로 키워내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