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으로 선선하고 점심때는 더운 이맘때, 즉 보고서 시즌이 되면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글쓰기에 대해서 질문하곤 한다. 필자는 이 질문들 중 ‘창의적’인 글이 뭐냐는 질문이 가장 어려웠다. 그에 대한 대답 또한 필자 자신도 모르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얼버무렸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여기에서는 후배들에 대한 사과의 의미를 담아 인문학 수업에서 요구되는 방향의 창의적 글쓰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보겠다.

필자의 경험상, 많은 학생들은 거창한     ‘창의성’을 향해 노력한다. 부족하나마, 필자는 두 학기에 걸쳐 핵심교양 조교를 담당하며 100여명의 글을 첨삭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은 굉장한 노력을 들여서 ‘지금까지 없었던 주장’을 펼치려 하거나, 혹은 주어진 원전 중에서 자신이 보기에 ‘가장 멋진 말’을 인용하면서 그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거나, 또 때로는 보고서와 관련되어 ‘자신이 겪은 사례의 나열’을 제출한다. 


필자는 수업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은 이런 종류의 ‘창의성’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주고 싶다. 아마도 이 학생들이 생각하는   ‘창의성’의 의미는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창의성’은 큰 난점들을 가진다. ‘지금까지 없었던 주장’은 보통 틀린 주장이며, ‘가장 멋진 말’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말이고, ‘자신이 겪은 사례의 나열’은 애초에 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의 거창한 ‘창의성’이 적절하게 개진되려면 A4 20~30장 정도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달리, 수업에서는 좁은 의미의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는 수업에서 나타난 주장들에 대한 학생들의 비평을 수업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전개하라는 말이다. 필자의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적절한 창의성을 보여주었던 학생들의 글에는 대부분 두 과정이 나타난다. 첫 번째 과정은 우선 글이 담고 있는 주장과 그에 대한 근거, 그리고 도출 과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물론 여기에서 창의적이라 할 만한 내용은 없지만, 이 과정 없이 나타나는 소위 ‘창의적인’ 주장은 대부분 부적절한 창의적 주장이다.


두 번째 과정은 글쓴이가 사용하는 전제에 대한 분석 혹은 그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 대한 비평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결론은 전제를 필요로 하며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증명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전제로부터 학자들은 연역적, 혹은 귀납적인 추론을 거쳐 결론을 이끌어 내는데, 이 과정도 종종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적절한 창의성은 대부분 명확한 용어와 사례로 이 둘을 공격/방어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첫 번째 과정을 통해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과정이 불명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금이나마 더 좋은 글을 쓰고자 할 학생들을 위해 굳이 사족을 붙여 보자면 조교를 적극 활용하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조교들은 담당 학생들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할 정도의 실력과 그를 위한 시간을 동시에 갖춘 몇 안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학생시절을 돌이켜 보면, 교수님들은 대화를 나누기 껄끄럽고, 같은 학부생끼리는 토론을 매끄럽게 진행할 실력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보다 열정적으로 되면 필자가 100여명의 중간, 기말 보고서를 한 사람당 30분에서 한 시간씩 걸려서 채점하면서 얻은 학구적 희열을 다른 조교들도 보람차게 느끼게 될 터이니 이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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