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사제관계, 잠들어 있는 대학원생의 인권
일그러진 사제관계, 잠들어 있는 대학원생의 인권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2.09.23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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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서울대 대학원, 이대로는 안 된다 ④

연재순서
①학업과 학비, 이중고에 시달리는 대학원생  ②대학원생이 본 '연구중심 서울대'의 맨얼굴
③몸도 마음도… 대학원생 건강상태 '비상등' ④일그러진 사제관계, 잠들어 있는 대학원생 인권


“‘대학원생은 교수의 사노비’라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현재 처우가 열악합니다. 제 지도교수는 논문 지도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적을 위해 논문 작성을 강요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해도 외면한 채 오히려 연구원 봉급을 강제로 반납하게 합니다. 소극적으로 항의도 해봤지만 ‘당연한 거 아니냐’며 오히려 저를 나쁜 사람 취급했습니다. 온갖 잡무와 교수 개인의 실적관리까지 담당하다보면 제가 이곳에 공부하러 온 것인지 잡무를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립니다.” 인문사회계 대학원생 A씨의 이같은 말은 전체 대학원의 상황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지난학기 『대학신문』 설문조사에 따르면 <표>에 열거된 항목 중 한 가지 이상을 경험한 학생은 전체의 40.7%에 달했다.

먼저 많은 대학원생들은 부당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원생들은 무보수로 연구에 동원되거나(26.5%) 집안 대소사 등 사적 업무 지시를 경험한 경우(14.2%)도 있었다. 한 대학원생은 “이공계에서는 교수님의 집에 불려가서 컴퓨터를 고치고 자택 이사에 동원되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협동과정의 한 대학원생도 “교수님 가족의 행정이나 지인, 인맥 챙기기 등 당연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관행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구에 지장을 주는 과도한 업무를 지시받았다는 응답(17.4%)도 있었다.

교수로부터 신체·언어적 폭력이나 차별과 무시를 경험했다는 학생도 상당수였다. 공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박사 5년차 연구자지만 지도교수의 욕설과 부적절한 언행으로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자주 고민하고 있다”며 “연구실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자연과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자대생에게는 각종 장학금과 연구 기회를 다양하게 열어주지만 타대생과 여학생에게는 차별이 심하다”며 “랩 미팅시간에 농담을 일삼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준다”고 말했다. 성희롱 및 성폭력(2.1%), 논문 대필(2.1%), 논문 심사 등을 빌미로 금품 요구(0.7%)등을 겪었다는 응답도 있었다. 자연과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교수님이 성희롱 발언을 자주 하시는데 성희롱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며 “교수님들에 대한 성희롱 예방 교육이 더욱 강화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교수가 악의적으로 졸업을 지연(4.1%)하거나 연구비 혹은 대학원생 장학금을 유용했다(8.0%)는 응답도 있었다. 공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부당하고 비공식적인 이유로 졸업을 거부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라며 “대부분의 경우 학생의 잘못으로 끝나버린다”고 말했다. 자연과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연구비를 카메라, 노트북 등 교수의 개인 물품 구입에 이용하는데 정작 연구 재료비는 부족해 빚이 쌓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문사회계의 한 대학원생도 “인건비의 일부만 지급하거나 무임금으로 대학원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며 “본부에 보고해도 조용히 묻기에 급급하고 내부 고발자에게 오히려 불이익이 갔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은 졸업에 대한 지도교수의 절대적 권한이 이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과학계의 한 대학원생은 “대학원생들의 졸업에 전권을 행사하는 권한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불합리한 처사를 겪고도 묵인하고 방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학계의 한 대학원생도 “부당한 관행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대학원생의 졸업을 손에 쥐고 있는 교수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암울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공학계 대학원생은  “일정량 이상의 SCI 논문을 내면 졸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졸업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학원생들은 자치기구 조직, 대학의 감독 강화 등을 대안으로 꼽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교수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석영씨(교육학과 석사과정)는 “자치기구가 필요하지만 활발히 활동하거나 시간을 투자할 대학원생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자치기구가 조직되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학원생을 함부로 대하는 교수들의 관행이 깨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A씨는 이어 말했다. “대학원생이 겪는 부당한 대우를 주위에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교육행정을 교수가 좌우하고 대학원생은 학교 구성원으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상황, ‘학위따러 그 고생하러 간 네가 자초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힘듭니다. 얼른 시간이 지나서 졸업 후에 이곳을 꿈에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의 한탄은 일부라고 치부하기엔 심각한 대학원 인권실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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