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문왕 시절의 일이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이 복두장이를 시켜 귀를 가리는 왕관을 만들었다. 비밀을 발설할 시 죽음을 면치 못하는 복두장(幞頭匠)은 답답한 나머지 대나무숲에 들어가 홀로 외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숲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울려 퍼지고 소문은 온 세상에 퍼지게 된다.

천년도 훨씬 더 된 그 대나무숲이 21세기 SNS에서 부활했다. 트위터에 대나무숲 계정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자기 회사 사장을 비판하는 ‘출판사 X’라는 계정이 폭파되자, 이를 애도하기 위해 출판사 옆 대나무숲(@bamboo97889)라는 대나무숲이 최초로 열렸다. 이를 본 떠 각 분야의 대나무숲이 생겨났다. 게임회사 옆 대나무 숲, 방송사 옆 대나무 숲, 심지어 시댁 옆 대나무숲까지.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끈 대나무숲은 ‘연구실 옆 대나무숲’과 ‘우골탑 옆 대나무숲’이었다. 전자엔 이공계 대학원생의 절규가, 후자엔 인문사회계 대학원생의 비탄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난 교수님 해외출장 가셨을 때 개밥 주러 매일 교수님 댁에 갔다.’ ‘교수님 찢어진 청바지 입고 왔다고 그 안에 손가락 넣으시면 성희롱이거든요?’ ‘방학 때 자기 애 보모 하라고 대학원생들 불러다 면접 본 교수도 있어요.’

『대학신문』이 네 번에 걸쳐 연재한 「서울대 대학원, 이대로는 안 된다」 연재기사는 대나무숲의 메아리가 다른 학교의 일도, 예외적인 문제도 아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에 지장이 있는 학생이 45.7%에 달하고(「학업과 학비, 이중고에 시달리는 대학원생」), 연구실이 없는 대학원생들은 학부생과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를 맡아가며 어렵게 연구를 하고(「대학원생이 본 ‘연구중심 서울대’의 맨얼굴」), 51%의 학생이 스스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진단하고 있으며(「몸도 마음도…대학원생 건강상태 비상등」),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해도 외면한 채 오히려 연구원 봉급을 강제로 반납(「일그러진 사제관계, 잠들어 있는 대학원생의 인권」)당하고 있다. 법적·윤리적인 문제의 소지가 있는 연구비 유용, 성추행, 논문 대필, 금품 요구 등을 경험한 대학원생도 적지 않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연재기사 속 대학원생들의 한탄을 들어보자. 기본적으로 “학위 따러 그 고생하러 간 네가 자초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고 “졸업에 전권을 행사하는 지도교수 권한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불합리한 처사를 겪고도 묵인하고 방관할 수밖에”없으며 “부당한 대우를 주위에 얘기해도 교육행정을 교수가 좌우해” 소용이 없다.

경문왕은 비밀이 탄로 날까 대나무 숲을 베어버리게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산수유나무가 자라자 바람이 불면 다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메아리쳤다고 한다. 침묵의 카르텔 속에 많은 대학원생들이 몸도 마음도 병들고 있다. 교육이 미래의 희망이라면 ‘서울대 대학원,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한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