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②

서울대에는 제각기 학교의 ‘명물’이라 불리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 공간 안에는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다. 『대학신문』은 총 4회에 걸쳐 각 공간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나눠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① 서울대 정문
② 본부 앞 잔디
③ 아크로
④ 자하연

봄·가을축제와 채용박람회를 제외하고는 엄지발가락조차 들여놓기 힘든 ‘본부 앞 잔디’. 지금 이곳은 관악의 학생들에게 축제 때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막걸리 한잔을 즐길 수 있는 푸른 잔디밭으로 기억되는 장소다. 하지만 본부 앞 잔디는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려, 행정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푸른 ‘총장잔디’를 학생문화의 일부로 끌어온 관악 학우들의 지난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본부 앞 잔디의 시작

1971년 10월 12일, 본부 앞 잔디는 가로 89m, 세로 61m, 총 5,226㎡(약1580평)의 넓이로 종합캠퍼스 최종 마스터플랜 도면상에서 첫 모습을 드러다. 학생회관과 대학본부를 비롯한 캠퍼스 일부가 완공되던 1975년, 캠퍼스를 구성하는 녹지경관 중 일부로 본부 앞 잔디가 조성된 것이다.

사실 행정관 앞 잔디밭에는 분수대와 수로식 연못까지 조성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잔디밭 정중앙에 있는 납작한 맨홀이 그 흔적이다. 관리과 김용옥 사무관은 “본부 앞 잔디 아래에는 수도가 잔디밭 한가운데로 모이도록 배관돼있다”며 “관경 80mm의 상당히 굵은 도수관은 스프링클러보다는 분수에 적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 앞 잔디는 현재 학생들 사이에서 소위 ‘총장잔디’라 불리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총장잔디’란 별칭이 만들어진 정황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별칭의 유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학생들이 본부 앞 잔디를 가로지르자 총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내 잔디에서 나가!”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다. 또 항간에서는 본부 앞 잔디에 무단침입 시 경비원이 뛰쳐나와 화를 내기 때문에 총장이 아낀다고 여겨 ‘총장잔디’라고 명명됐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총장잔디’라는 용어는 대동제를 설명하는 『대학신문』의 코너 ‘낙수(落穗)’에서 “관악 5월 대동제 민가협장터의 성황이유는 ‘총장잔디’와 가깝다는 지정학적 유리함 때문”이라는 문장에도 전해진다.(『대학신문』 1994년 5월 23일자)

사진 제공: 대학신문 DB(좌), 본부스탁 관계자(우)


무너진 ‘총장’잔디의 아성

그렇다면 ‘총장잔디’는 과연 총장만 밟을 수 있는 잔디일까? 정답은 ‘아니다’다. 현재 본부 앞 잔디는 축제와 채용박람회 기간에 학생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본부 앞 잔디가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5년 입학식이 개최된 이후 꾸준히 막혀있던 본부 앞 잔디는 1987년 축제의 장이 되면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개방됐다. 최초로 학교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은 제29대 총학생회(총학)는 학교의 지원 아래 본부 앞 잔디밭에서 가을대동제 ‘통일함성제’의 개막식을 진행했다. 개막식에 참가한 학생 2천여명은 본부 앞 잔디에서 민족통일의 염원을 담아 단체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사진 ①)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본부 앞 잔디의 사용여부는 총학과 본부의 긴장관계에 따라 달라지기 일쑤였다. 1996년 가을대동제 ‘손들자유’ 기간에는 총학과 본부가 본부 앞 잔디이용에 관해 대립각을 팽팽히 세워 논란이 됐다. 봄대동제 이후 쓰레기와 담뱃불로 잔디가 엉망이 되자 본부에서는 본부 앞 잔디가 축제의 마당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총학은 이를 “사용 시 물의만 일으키지 말라”는 뜻으로 잘못 받아들여 가을축제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가을대동제를 코앞에 두고 본부는 전야제, 개막제 이외의 행사가 본부앞 잔디에서 진행될 경우 총학에 대한 징계 및 예산지원중단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총학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대동제는 본부 앞 잔디를 제외한 캠퍼스에서 이뤄지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본부 앞 잔디는 점차 대동제의 중심으로 부상한다. 기존 축제에서는 개·폐막제를 비롯한 주요행사가 아크로를 중심으로 학내 곳곳에서 고르게 개최됐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본부 앞 잔디가 대동제의 주 무대로 떠오르면서 행사 대부분이 본부 앞 잔디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게 됐다. 

‘총장’잔디가 ‘학생’잔디로

2000년대를 기점으로 학생들은 행정관을 마주한 탁 트인 잔디밭에 모여 본부에 대한 불만을 재치있게 표출해왔다.

2000년 3월 초, 공대학생들 일부가 본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평소 출입이 금지됐던 본부 앞 잔디에 모여 2주 가량 축구와 발야구 경기를 벌였다. 이 경기는 1999년 본부가 농생대 이전 부지를 자연대 운동장으로 결정하면서 약속한 인근 새 운동장 조성이 무산된 데서 기인했다. 학생들은 본부 앞 잔디 위를 점유함으로써 잃어버린 자치공간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처럼 학생자치의 일부로 본부 앞 잔디를 이용한 학생들의 의사표출은 본부 앞 잔디의 명칭을 ‘학생잔디’로 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졌다. 2011년 6월 17일 학생들은 법인화 반대를 기치로 열린 본부스탁(사진 ②) 도중 동서남북을 향해 ‘여기는 학생잔디!’라고 외치는 ‘학생잔디’ 선포식을 진행했다. 이 선포식은 당시 학생들에게 본부 앞 잔디가 가지는 학생자치공간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 자리였다. 당시 총학생회장 이지윤씨(인류학과·07)는 “공연참가자와 관객 모두 본부 앞 잔디에서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랐기 때문에 한마음으로 ‘여기는 학생잔디!’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올해 5월 현 총학생회장이 속한 「Ready, Action!」 선본은 작년 학생들에게 본부 앞 잔디를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총학생회장 오준규씨(법학부·08)는 “본부 앞 잔디를 비롯한 학생 자치공간의 규제를 푸는 요구 안건을 다가오는 세 번째 대화협의체에서 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본부 앞 잔디가 학생자치의 공간으로 발돋움한 세월은 비록 짧지만, 90년대 이후 이곳에서는 축제를 비롯해 굵직한 학생문화가 자생해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본부 앞 잔디에서는 가을축제가 열린다. 다시 푸른 풀밭이 관악의 학우들에게 공개되는 짧은 이 기간 동안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러운 풀밭 위에서 본부 앞 ‘학생잔디’의 가치를 곱씹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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