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항해시대』저자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

많은 사람들이 ‘대항해시대’를 1990년대를 풍미한 비디오 게임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 그 게임의 배경이기도 한 대항해시대는 역사적으로 15세기 초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를 지칭한다. 이러한 ‘대항해시대’가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가 바로 『대항해시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대항해시대』)의 출간이다. 『대항해시대』는 2008년 출간된 이후 서울대 출판문화원 사상 최단기에 2만부를 돌파했다. 『대항해시대』는 기존의 거의 모든 역사서가 역사를 해양의 관점보다는 대륙의 관점, 특히 농경 문화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달리 해양 세계의 팽창에 주목해 근대 세계사를 연구한 책이다. 『대학신문』은 『대항해시대』의 저자 주경철 교수(서양사학과)를 만났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학술서로 출간한 『대항해시대』가 대중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대항해시대』를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이 주로 역사를 봐 온 것과는 다르게 역사를 보고 싶었다. 나는 의도적으로라도 역사의 판을 바꿔보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일환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을 육지에서 바다로 이동시켜 보았다.


◇『대항해시대』의 부제가 ‘해상 팽창과 근대 세계의 형성’이다. ‘바다’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다를 키워드로 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소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를 다 연구할 수는 없지만 각 지역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 연구해보는 것은 의미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세계 여러 지역들이 바다를 통해 접촉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전 지구적인 해상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이를 통해 사람과 상품, 지식과 정보, 사상과 종교 등이 교환됐다. 하지만 상호 접촉과 소통은 갈등과 지배로 이어졌고 일종의 수직적인 구조가 형성돼 무력 충돌, 경제적 착취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처럼 바다를 통해 온 세계가 참여하는 복잡한 사건들이 전개돼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바다에 주목해 역사를 보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기존의 관점과 같이 세계 모든 지역의 역사를 각기 자세하게 기술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각각의 지역사를 모아 세계사를 구성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필연적으로 어떤 종류의 ‘중심주의’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의 관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중심주의’이다. 세계사를 해양을 통한 교류의 역사로 볼 때 그동안 유럽중심주의 프레임에 갇혀 놓쳤던 부분들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다.


◇『대항해시대』에서 바라본 근대 역사는 어떠한 모습인가
근대 세계는 폭력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기본적인 폭력은 서구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착취했던 ‘좁은 의미의 폭력’이다. 그것이 이 세상을 만든 기본 동력이다. 그러나 실제로 근대 사회를 만든 것은 좁은 의미의 폭력이 일으킨 ‘넓은 의미의 폭력’이다. 넓은 의미의 폭력이란 근대 이후에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으로 이주해 오랫동안 비교적 고립돼 발전해 왔던, 충돌의 잠재력만 갖고 있던 인류 문명들을 충돌시킨 것을 의미한다. 유럽인들은 좁은 의미의 폭력으로 그 잠재력을 폭발시켰지만 그들이 전적으로 이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근대 이후에 펼쳐졌던 잠재력 폭발의 과정이 폭력적이었다는 것이 ‘넓은 의미의 폭력’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이다. 즉, 첫 동력은 유럽에서 촉발됐지만 그 나머지는 전 세계의 공헌에 의해 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내가 이 책을 쓰면서 품었던 메시지이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어떤 것인가
『대항해시대』에서 다루지 못했던 ‘유럽인들의 심성’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인들이 왜 죽음을 무릅쓰고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했을까’, ‘그 후 상륙하게 된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을 학살했던, 진취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정복욕이 어디에서 근거하는가’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신항로 개척을 유럽인들의 심성과 관련지어 연구하는 것이 『대항해시대』의 전체적인 주제와는 맞지 않아 함께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 연구는『대항해시대』의 후속작업인 셈이다.


◇최근 연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콜럼버스를 통해 본 근대 초 유럽인들의 정신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콜럼버스를 보는 기존의 ‘진취적이고 과학적인, 용기있는 탐험가’라는 유럽의 시각과 최근 새로이 제기된 ‘현지 주민을 학대하고 전염병을 불러온 문명 파괴의 원흉’이라는 시각은 모두 정치적인 서술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콜럼버스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되살려 보면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종말론’에 깊이 경도돼 있는 사람이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탐험 이전, 자신이 나름대로 공부한 결과 세상이 150년 남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세가 오기 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슬람교도를 박멸하며 온 세상을 기독교화해 십자군을 일으키면 예수가 재림해 인류는 아담과 이브가 살던 행복한 세상인 에덴 동산으로 간다는 것이 콜럼버스의 역사관이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기독교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주체인 마지막 황제를 보좌하는 조력자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에 에덴 동산 발견을 목표로 신대륙 탐험에 나섰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는 ‘내가 에덴 동산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콜럼버스의 이러한 모습은 그동안 거의 언급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이것이 기존의 인식보다 콜럼버스의 본모습에 가깝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를 통해 콜럼버스로 대변되는 유럽인들의 팽창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사적으로 ‘하느님이 내린 소명이며, 이는 곧 인류 역사의 구원’이라는 강력한 자기확신과 정당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는 어떤 역사서를 쓰고 싶은지 궁금하다. 역사에 어떤 역사학자로 기록되고 싶은가
향후에는 개별 주제마다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깊이 있는 역사서와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개설서를 써보고 싶다. 특히 역사에 대한 해석을 만들어 보여주는 수동적인 책보다는 사료를 제시해 내 주장을 예시로 보여주고 독자가 능동적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을 쓰고자 한다. 나는 우리 학계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달려들어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본 역사학자로 기록됐으면 좋겠다. 그 내용을 후학들이 수용하든지 비판하든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이 다른 연구를 시도하는 데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연구를 했던 학자로 기억된다면 가장 큰 기쁨이겠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