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재] 시인의 서재 ③ 이이체 시인

시인들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이 꽂혀있을까. 작품을 써내는 이들은 어떤 작품에 울고 웃었을까. 『대학신문』은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러 연령대의 시인 4명의 서재를 살짝 들여다본다. 서재에 꽂힌 작품을 통해 독자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자.

연재순서
①함민복 시인 ②김소연 시인 ③이이체 시인 ④신해욱 시인




당신은 어디로 가서 죽을까. 마음에도 죽음이 있다면 어떤 사유의 피부에 이를 것이다. 물이 된 불로서의 피는 비단 인간의 육체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다. 피의 맴도는 자리에 이르러 마음은 발견된다. 이것을 혹자는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의 암(癌)이라고 한다. 베케트는 부정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시 한 번 치환했고, 이 악한 약(藥)이 속된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삶을 지루하게 지연시켰다. 당신은 안다거나 혹은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침묵한다. 저번 시대에 한 시인이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한낱 착각 같은 아름다움을 보고 갈 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친절이란 그렇게 육체의 가뭄처럼 살갗 사이로 스며들듯이 찾아왔다가 허허롭게 떠나가는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열고 죽은 이들의 육성을 듣는다. 늙어 죽어가는 짐승의 앞에 앉아 가만히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의 입에서 떠나지 못한 죽음들의 사연을 하나하나씩 떠올린다. 모든 고백과 실토가 끌리는 밤이다. 당신은 아는가. 인간은 침묵하는 웅덩이다. 고여서 운다. 그 울음을 견디는 행위를 불순한 낭만이라고 부를 때 삶은 비참에 육박한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한 사람이, 비참해지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비참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비참을 바라는 것이다. 비참이 이미 육화되어 있는데도, 몸이 몸인 줄 모르고 몸을 찾아 헤매는 눈 먼 혼이 있다. 당신에게 이 더러운 말씨를 설명하려고 이 죽음들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모순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욕망은, 인간이 인간을 시로 써내겠다는 사랑일 것이다. 그 비애감 가득한 혼신은 얼마나 무모한 모순인지를, 그녀는 방랑하는 죽음들을 전시하면서 체화해낸다. 이 비좁은 공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오직 실성한 슬픔만 곁에 머물 것이다. 부디 마음을 위로하지 말기를. 마음을 얻고 떠나간 죽음들이 그토록 어슴푸레한 거짓말이었음을 기억하기에, 오늘은 누군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밤이다,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녀는 그 떠나보냄이라는 야윈 행위가 권태롭지 않으나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추억하는 것이다. 빈천한 송가는 모두 주검 위에 바쳐지는 것이고, 당신은 가끔 던져지는 뼈다귀 같은 희망을 개처럼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 죽음들을 당신의 몸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지 않아서.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언젠가 흘려보냈던 수많은 타인의 죽음들이 떠나지 못해서 제자리걸음으로 방랑하다가 하나의 프랑켄슈타인 괴물로 엮여버린, 온갖 죽음들의 복합적인 주거인 것이다. 세상엔 거짓말쟁이들이 천사들처럼 살고 있다. 이 직유가 가능해서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그 천국이 아닌 채로 천국으로 묘사되는 세상에서, 당신은 그녀가 남긴 책을 유언처럼 기리며 삶의 방법을 반려해야 될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못한 거짓말이 있다. 서로가 아껴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란 그만큼 혹독한 사랑에 옥죄인 채로 겉도는 움직임이다.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진다. 당신을 죽이겠다. 당신은 피 없이 건축된 역설. 흐르는 목숨이 없는 축조물은 없다. 그녀가 흘려보냈던 목숨들은 모두 그 흐름에 구속되어 저의를 잃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모습을 버린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의 가난을 훔쳐가는 아름다운 죽음들. 바깥을 향해 몸부림치던 속살 같은 마음이 있다. 만진다는 것은 외부와 섞이기 위함이라기보다, 외부와 섞일 수 없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안으로 들어오기는커녕 바깥에서부터 이미 서로의 윤곽과 틀을 무화시키지 못해 각자 다른 몸일 수밖에 없는 줄 알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느라 뒤척거리는 몸짓이다. 몸은 하나 될 수 없지만, 피아와 타아는 그 움직임으로 서로의 경계를 잃는다. 잃으면서 거울을 얻는다. 나의 거울 ‘너’와 나의 거울 ‘나’를 일치시키는 종교 의식이다. 그러므로 만진다는 것은 숙연한 욕망인 바, 부디 함부로 소모하지는 말아라. 삶을 떠나온 적 없던 죽음이 당신을 헤매고 싶다고 말한다.



이이체 시인
198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2008년 『현대시』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가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