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박물관 건립의 정당성을 찾는다. 첫째,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산물”인 “자랑스러운 역사”의 재현을 통해 국가 마루지를 만들어 국민에게 ‘감동’과 ‘자긍심’을 선사하고 둘째, ‘국사’를 대중화하여 ‘국민’의 역사 지식과 인식 수준을 높이고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성공담을 들려줌으로써 개발도상국에게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혹자는 박물관에서 마치 성공신화를 다룬 최루성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체험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소비’를 끝마치고 난 뒤 마음은 허하지 않을까.
실제로 박물관은 상처투성이다. 우선 건립주체의 비전문성이 지적될 수 있다. 건립추진위원 명단의 경우 민간위원 19인 중 역사학 전공자는 4명, 전문위원 21명 중 한국현대사 관련 전문연구 실적을 가진 사람은 6-7명에 불과했다. 역사적 평가가 분분한 시기인 만큼 최소한의 합의를 위해 현대사가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이러한 고민이 반영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또한 민주적 절차가 최소한의 정당성과 실효성의 토대임을 감안할 때 제대로 된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건립과정상 심각한 문제점을 시사한다. 전시내용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건국-부국-선진화’의 협애하고 단선적인 역사 인식에 근간한 전시 구성 속에서 친일행적, 국가폭력의 상처와 아픔, 저항의 측면, 그리고 통일의 전망은 희석화된다. 이러니 박물관이 ‘극우파 보수 세력의 정신적 위안소’ 혹은 ‘이승만-박정희 기념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단순히 좌파 역사관으로 일축하고 넘어 갈 일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역사박물관은 지구상에서 우리만이 만들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현실을 잘 묘사한 말로 들린다. 지금도 박물관에서는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비역사적이고 비극적인 서열화, 주변화, 상대화, 배제, 무화(無化)가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다. 이제라도 무지와 무관심의 벽을 깨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개관을 연기하고 전시 방향과 내용에 관한 폭넓은 민주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박물관이 과거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과 기억이 전시를 매개로 개인의 삶에 연계됨으로써 역사적 지식, 깨달음, 반성, 전망이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준성 박사과정
정치학과
대학신문
snupress@sn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