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은 오늘도 시끄러웠다. 대숲을 찾는 이들은 긴 추석연휴가 지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제각기 털어놓은 한 줌의 애환들이 하염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메아리치던 신라의 대숲이야기를 다시 꺼내놓은 것이 아니다. 요 근래 트위터 타임라인을 메우고 있는 ‘○○○ 옆 대나무숲’ 계정의 이야기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에서는 출판 노동자들이 출판업계의 현실에 관해 하소연하고, 연구실 옆 대나무숲에서는 대학원생들이 교수와 선배의 부당함을 토로한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숲에는 약자들의 목소리가 넘실댄다.

약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은 응당 언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덩치 큰 이들이 외려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는 이 사회에서 오직 언론만이 그와 비등한 크기로 목청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권력으로, 자본으로 틀어 막힌 약자들의 외침을 방관하지 않을 수단은 언론뿐이라 믿었다. 그러나 ‘우후죽순’들이 세를 넓히는 동안 언론의 입은 다른 곳을 향해 트여있었다.

그 시각 전파를 채우고 지면을 잠식한 것은 두어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였다. TV 뉴스에는 대선과 관련된 보도가 점철됐고,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이름자와 면면(面面)이 연일 오르내렸다. 각종 포털은 ‘대선레이스’라는 이름을 걸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쏟아냈다. 대선을 제외한 어떤 것도 현 한국 사회의 의제로 부각되기 어려워 보였다.

기왕 대선을 다룰 것이라면, 미디어가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현안들을 대선이라는 명목 아래 세세하게 훑어내기를 바랐다. 그를 통해 현실과 부합하는 공약을 각 후보들의 진영에서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것이 마땅히 조명해야 할 사회의 음지에서 대선으로 눈길을 돌린 언론이 제값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이게 웬걸. 지금 미디어는 사회현안에 주목하기보다 대선후보들의 흠결을 찾아내기에 바쁘다. 무위로 돌아간 가장 최근의 보도,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속에는 도덕성이 부각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숨겨진 과거를 들춰냈다는 은근한 희열마저 담겨있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의 중재자가 돼야 할 언론이 오히려 공방전의 도화선이 되고야 만 것이다. 한낱 언론의 소비자에 불과한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그저 좌시하는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약자들이 직접 소리를 모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은. 으레 언론이 하리라 믿었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내가 느낀 비애감, 이 같은 비애감들이 모여 대나무숲으로 화(化)한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가장 낮은 공간에도 기록자가 생겨나고 대중의 관심이 닿게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애감이 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은 이 대나무숲이 SNS에 조성된 까닭이다. 진심을 내보인 술회가 140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로운 ‘입’이 악의적인 왜곡과 선동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는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못 아쉽다. 그래서 언론을 흔드는 단초가 된 이 대숲이 진짜 ‘입’이 되지는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 기자이자 소설가, 언어학자로서 알짜배기 글들을 써왔던 고종석 씨가 절필을 선언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파논리에 휘말린 언론이 앵무새처럼 자극적인 이야기만을 재생산하는 와중인데 자신의 말을 읊던 입들마저 사라져간다.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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