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군기지 주변에 형성된 촌락 ‘기지촌’에 대한 기억은 모두가 풍족할 수 없었던 60년대에 머물러있다. 미군들에게 웃음과 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일명 ‘양공주’들의 삶도 이젠 제법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이질적으로만 다가왔던 기지촌의 삶은 우리도 모르게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리틀 시카고’, 바로 그 곳에서 기억 속의 삶이 재현되고 있다.

저자 정한아는 ‘리틀 시카고’라 불리는 국내 기지촌 삶에 주목하며 어두운 곳으로만 정의되던 기지촌에서 희망을 이야기 한다. 저자는 책 제목 리틀 시카고에 대해 “실제 동두천에 있는 미군 기지촌의 별명”이라며 “범죄의 도시로 알려진 미국의 ‘시카고’와 닮았다”고 전한다. 또 “절망적인 환경에 인간은 실패에 좌절해야만 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한줄기 희망으로 기적을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며 『리틀 시카고』의 집필의도를 밝혔다.

『리틀 시카고』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일찍 커버린 선희, 열두 살 어린 소녀다. 『리틀 시카고』에서는 선희의 눈을 통해 꾸밈없이 순수한 시선으로 기지촌을 그리고 있다. 일찍 커버린 선희는 절망 속에 살아가는 기지촌의 사람들을 감싸안는 법에 적응하며 성장해 간다. 하지만 부대 이전이 결정되면서 그동안 절망과 위로 사이에서 유지되던 기지촌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마을은 혼란에 빠지고 공동묘지의 철거와 함께 골프장이 유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선희는 보고 싶은 엄마가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공동묘지에 묻힌 엄마의 무덤이 없어질 거란 두려움에 매일 장미꽃을 심는 선희. 선희에게 장미꽃은 소중한 것을 지켜주는 보호막이자 놓을 수 없는 하나의 희망이다. 혼란 속의 기지촌에 비가 내리고 장미꽃이 피면서 소녀의 꿈은 기적처럼 현실로 다가온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았던 소설은 선희가 그동안 챙길 수 없었던 자신의 슬픔과 마주하면서 다시 어두운 현실과 부딪힌다. 선희는 엄마로부터 버려졌다는 슬픔, 그리고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모두 제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동안 차마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토해낸다. 태연하게 아픔에 대처하는 법까지 배운 선희는 그렇게 점점 더 어른이 돼갔다.

선희의 성장기를 담은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많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기지촌을 떠나지 않는 여러 약자들이다.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불법체류자, 노인, 고아 그리고 가난으로 상처받은 이들. 남들은 이들을 향해 “기지촌에서의 삶은 불행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이들은 진정으로 기지촌에 생명을 불어넣는 주인공이자 골목을 지켜나간 사람들이었다. 책 속에서 이들은 말한다. “이제,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고. 이들에게 상처투성이었던 골목과 기지촌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이었다.

“골목 안에 변치 않는 것이 하나쯤 있어야 사람들이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떠난 이들을 향한 선희의 당부는 그들이 이 골목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말해준다. 선희가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기에 희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나는 이 골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선희의 마지막 다짐에 어두운 리틀 시카고는 다시 희망을 노래한다. 다시는 멈추지 않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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