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서재] ④ 신해욱 시인

시인들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이 꽂혀있을까. 작품을 써내는 이들은 어떤 작품에 울고 웃었을까. 『대학신문』은 문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여러 연령대의 시인 4명의 서재를 살짝 들여다본다. 서재에 꽂힌 작품을 통해 독자로서의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자.

연재순서
①함민복 시인 ②김소연 시인 ③이이체 시인 ④신해욱 시인



일종의 추리소설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던 날들은 팔월이었다. 나의 세계는 덥고 습했지만 책 속의 세계는 끔찍이 추웠다. 앞부분은 덴마크의 12월. 영하 18도. 뒷부분은 거대한 얼음들로 뒤덮인 그린란드의 서쪽 바다. 게다가 내가 접해 본 적 없는 낯선 지리, 낯선 구조물을 빽빽하게 묘사하는 문장들을 뚫고 나가자니 읽는 일 자체가 마치 살을 에는 맞바람을 받으며 간신히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멍하니 앉아 땀을 흘리다가 옷장 문을 열었다. 겨울옷들 사이에서 세탁소 비닐 커버 채로 걸어두었던 털 달린 외투를 꺼내 어깨에두르고 다시 땀을 흘렸다. 스스로 좀 우스웠지만 그러고 싶었다. 반쯤은 체감기온의 격차에 대한 나름의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반쯤은, 저 희고 거친 세계 속 스밀라의 빛에 약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뜨거운 매력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머리를 굴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고 나의 사랑, 나의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 요컨대 순정과 열정의 소유자들. 반대로 차가운 매력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있다. 섬세하고 확고한 자기 세계를 지녔기에 함부로 무너지지도 함부로 곁을 주지도 않는, 흔히 ‘쿨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성향과 기질의 소유자들. 가령 레이먼드 챈들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근사한 주인공들. 다만 안타깝게도, 그리고 약간은 희한하게도, 한결같이 뜨겁기만 하면 점액질의 끈적함이 묻어나고 지나치게 쿨하면 어느 결엔가 느끼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 스밀라는 차가울 만큼 차갑되 느끼하지 않고 화끈하게 뜨겁되 끈적이지 않는다. 이웃 아이가 죽었다. 눈 덮인 높은 지붕에서 떨어졌다. 다들 실족사라고 했지만, 눈 속에 남아있는 발자국의 궤적은 기묘했고 아이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무언가 확실히 잘못됐다. 그래서 스밀라는 미스테리 속으로 뛰어든다. 풀메이크업에 값비싼 모피코트 차림으로 야밤에 담을 넘고, 불타는 배에서 바다로 몸을 날린다. 등골이 서늘한 순간에도 뻔뻔한 직설과 시니컬한 유머를 닥치는 대로 휘두르고, 인정사정없이 찌르고 패고 맞으며, 그리고 무릎이 나가고 코뼈가 무너진 채 말 그대로 지구 끝 북극의 얼음바다까지 간다. 잘못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겠다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죽음 속에 아이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

서른일곱 살의 스밀라를 이토록 빛나는 독고다이로 만드는 것은 타고난 공간감각, 그리고 상실의 깊이와 그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다. 스밀라의 고향은 그린란드다. 얼음과 눈에 묻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그 야성적인 품을 벅차게 간직하고 있기에 근대의 정돈된 삶을 잘 맞는 옷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의 말, 도시의 편이, 도시의 감각 속에 일단 발을 들이고 나면 더 이상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고향의 말은 도시의 표준어에 묻혀 더 이상 입에 붙지 않고 시간은 삶의 리듬 대신 시계를 따라 흐르게 된다. 잃어버린 것은 되살릴 수 없다. 애써 되살려봤자 좀비에 지나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을 계속 사랑하는 방법은 ‘잃은 것의 있었음’을 이해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것뿐.

그래서 스밀라는 눈을 읽고 얼음을 읽는다. 눈과 얼음을 품은 수(數)의 세계를 읽고 죽은 아이의 흔적을 읽는다. 그녀가 읽는 것들은 너무도 내밀하거나 장엄해서 인간의 말로 쉬이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빈약한 언어가 이를 감당하려 할 때, 그 말들은 시가 되어 버린다. 음수(陰數)란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라는 거, 느린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시간을 다 줘야 한다는 거, 어떤 시인이 이런 말들을 다시 쓸 수 있겠는가.

이 소설에서 빛나는 사람은 스밀라 하나만이 아니라는 점도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죽은 아이 이사야로부터 이사야를 죽음으로 내몬 이에 이르기까지, 스밀라를 돕는 이들로부터 스밀라를 위협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제각각의 빛을 지니고 있다. 어눌함의 빛. 금욕적인 정직함의 빛. 경박한 허장성세의 빛. 절망적 사랑의 빛. 괴팍함의 빛. 그리고 비열한 욕망과 차가운 광기의 빛까지. 스밀라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정직한 게 아니라 정직하게 빛나고, 그냥 비열한 게 아니라 비열하게 빛난다. 빛은 선량함만을 편애하지 않는다. 나는 이 빛이 문학의 아름다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해욱 시인
1998년 세계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간결한 배치』, 『생물성』, 산문집 『비성년열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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