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나비 간사

“기억은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3개월만에 6만명 관객을 동원한 ‘두 개의 문’ 감독이 던진 한마디다. ‘두 개의 문’은 2009년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독립영화다. 그러나 영화에 사용된 영상들은 대부분 감독이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제공받은 것들이었다. 용산 참사가 벌어지던 현장과 이후의 투쟁을 직접 카메라로 기록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두 개의 문’은 세상 밖으로 알려질 수 있었다.

사진: 신선혜 기자 sunhie4@snu.kr


기억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억을 기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이면에는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밝혀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1인 미디어 활동가다. 그들은 파업 현장, 철거 현장 등 기성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은 소외계층의 삶을 조명하며 그 누구보다 앞장서 현장을 기록하고 그 속의 진실을 지켜낸다. 주류 언론이 침묵하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을 때 배제된 이들의 문제 상황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이를 공론화함으로써 이 사회에 일침을 던지는 것이다. 『대학신문』은 전국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미디어 활동가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의 나비(예명·29) 간사를 만나 미디어 활동가로서의 활동 방향과 고충을 들어봤다.

소외된 세상을 비추는 미디어활동가

나비씨가 영상에 매료된 것은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의 경험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2006년 미군기지 이전 문제 때문에 정부와 주민들 간 마찰이 있던 평택 대추리에서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 주민들의 요구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현장이었다. 그러나 각종 언론은 대추리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그저 앞다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만을 내보냈다. “그곳 주민들이 왜 대추리에 남아있고 싶어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어요.”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현장의 진실을 자신이라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뜻이 맞는 몇몇 학생들이 모여 카메라를 들고 그날그날의 일들을 뉴스 형식으로 기록해 인터넷에 올린 것이 10개월이 넘도록 이어졌고 이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미디어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전문적인 영상 교육을 받기 위해 미디액트라는 곳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듣고 이후 단편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친구들과 함께 ‘바니다’라는 팀을 만들어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는 88만원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개청춘’이라는 영화도 있었어요. 당시에는 20대의 불안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절이어서 우리의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여러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4대강의 생태 문제를 옴니버스 형식의 다양한 시각으로 다루는 프로젝트 ‘江, 원래’를 진행하기도 했다.

진실의 목소리가 현실의 벽을 넘으려면

우리사회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절박함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열정만으로 계속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았다. 영상촬영에는 값비싼 장비가 필요했고, 편집 과정에도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디어활동가들이 체계 없이 흩어져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시스템 상의 문제가 많습니다. 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하면 목소리도 더 잘 모이고 효율적인데도 사회운동가들은 매번 혼자의 능력과 희생으로만 운동하려고 해요.” 효율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구조나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서는 현재의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 미디어 활동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준비 과정이나 도움 요청 시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 다음 활동가 세대는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영상을 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재 그는 동료들과 함께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를 조직했다. 전국에 흩어진 미디어 활동가들 간 네트워크를 조직해 이들을 연결하고 장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인데다 이들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해 상황은 어렵다.
“현장에서 미디어활동을 하는 것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어쩌면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전국의 개인 미디어 활동가나 단체 회원이 지원하는 CMS(개인후원)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회원이 100여명으로 소규모인데다 지원이 불규칙해 활동에 어려움은 여전하다.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특별한 수입원이 없어 더 열악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소외된 투쟁의 현장에서 영상을 촬영하던 ‘숲속홍길동’씨가 생활고 끝에 목을 매 자살한 바 있다. 영화 ‘두 개의 문’을 제작하는 데 영상을 제공한 사자후TV는 재정난으로 문을 닫기도 했다. “다들 아르바이트 등 투잡을 뛰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시민활동가들이 희생정신만으로 행동하기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이들의 생계가 해결돼야 지속가능한 사회운동이 가능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비씨는 요즘 미디어 활동계에서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형성하거나 사회적 경제를 실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더 많은 목소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그는 최근 화제가 된 독립영화인 ‘두 개의 문’이나 ‘당신과 나의 전쟁’ 등을 보면서 희망을 갖는다. 진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인지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행동에 나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흥행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높은 관심이 영화 안에서 끝나지 말고 실질적인 사건 해결이 이뤄져야 해요.” 관객들이 스크린 밖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실에 대해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나비씨는 시민들의 미디어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사회활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에게 미디어 활동 교육을 하면서 보수적이고 소극적이던 사람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는지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는 시민들의 숨겨져 있던 목소리를 현장에서 발굴해 들려주기 위해 현재 ‘복지갈구화적단’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지역 미디어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노인, 노동자, 학생들이 자신이 직접 만든 영상을 방송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마을미디어교실 사업에서 교육받은 시민을 대상으로 라디오나 영상진행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내 의견을 직접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타인과 소통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나비씨는 자신이 몸담은 대안적인 미디어 활동이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 사고의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이라고 믿고 있다. “얼핏 들으면 추상적일 수 있는 민주주의는 사실 너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에요. 모두가 가진 자신만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남들과 나누면서 공동체의 합일을 이뤄가고 이러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알려야 할 진실이 남아있는 한, 그녀의 카메라는 쉴새없이 더 낮은 곳을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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