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 무한경쟁시대 돌입

일본 국립대들은 오래 전부터 이상 징후들을 보여왔다. 연령별 인구 감소현상이 두드러지고, 대학 졸업자들의 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일본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세계 최저수준으로 평가한다.


게다가 일본 내부에서도 국립대의 경쟁력은 사립대에 비해 처지고 있다는 평가다. 아사히(朝日)신문이 1999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천 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대졸 신입사원의 전문지식, 창조력, 국제감각을 중심으로 평가한 결과 와세다대와 게이오대가 각각 1, 2위에 꼽혔고, 상위 10위권 안에 국립대는 교토대(9위) 한 군데에 불과했다.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뭔가를 했을 때의 위험부담보다 크며, 같은 위험부담을 지고 있다면 개혁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히토츠바시(一橋)대 이시 히로미쓰 총장의 말처럼 일본의 국립대학들은 이제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립대’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지난 4월 1일, 일본의 89개 국립대는 ‘국립대학법인법’에 따라 국립대학 ‘법인’으로 탈바꿈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립대 운영의 전권을 행사하는 우리나라의 국립대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국립대는 그동안 문부과학성(문부성)의 산하조직으로 운영돼왔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국립대는 문부성이 교직원 숫자에 따라 기계적으로 배분한 예산을 재량권 없이 정해진 대로 쓸 수밖에 없었고, 국가공무원인 국립대 교직원의 인사권 역시 문부성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국립대학법인법이 시행되면서 각 대학들은 이제 학교 운영에 관한 전권을 스스로 행사하게 됐다. 국립대학법인에는 사립대 혹은 일반 기업의 이사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역원회(役員會)’가 설립되고, 역원회의 의사결정에 자문을 하는 ‘경영협의회’와 ‘교육연구평의회’도 함께 설립됐다. 특히 경영협의회에는 외부인사가 반 이상 참여해 학교 운영의 투명성을 강화했다.

학장(총장)은 학교 법인의 대표 자격으로 역원회에 참석,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업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며, 총장이 임명한 분야별 부총장과 문부대신(장관)이 임명하는 감사들 역시 역원회의 구성원이 된다. 총장은 경영협의회와 교육연구평의회 대표들로 구성된 학장선고(選考)위원회에서 선출하며, 문부대신이 그 임면권을 가진다.

▲건전한 경쟁 유도 vs 기초학문 고사 위기

국립대학법인은 학교의 중기목표를 설정, 6년에 한번씩 그 이행 정도를 문부성 산하 국립대학평가위원회로부터 평가받고 그 결과는 차기 중기목표기간의 예산배분에 반영된다. 기존의 획일적인 예산배분 구조를 버리고 학교간 경쟁을 극대화하는 체계를 갖춰 각 대학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문부성은 “대학의 독립법인화가 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새로운 예산배분 방식으로 학교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 국립대들이 스스로 발전 방향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 국립대들도 독립법인화를 학교 발전의 발판으로 삼아 도약하려 하고 있다. 쓰쿠바(筑波)대 요시타케 히로미치 총장특별보좌(부총장)는 “그동안 도쿄(東京)대, 교토(京都)대 등 정해진 수준대로 분배됐던 정부 지원금이 법인의 평가 결과에 따라 차등분배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에, 효율적인 개혁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학교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국립대들은 민간기업 관리자 출신을 간부로 영입하는 등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카즈오 오이케 교토대 총장은 “독립법인화는 공무원 수를 감축하려는 고이즈미 정부의 고육책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2010년까지 국가공무원의 25%를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고, “12만 5천명에 달하는 국립대학 교직원에 손을 대지 않으면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카즈오 총장은 또 “6년마다 대학을 평가해 국고지원을 재조정한다면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기초학문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국립대 사이에서 “기본재산에 큰 차이가 있는데 정부가 대학간 경쟁을 유도하고 평가하겠다는 것은 무리”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89개 국립대학법인의 재산을 평가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도쿄대의 재산은 8554억엔으로 전체 국립대학법인 재산의 10.7%를 차지했다. 가장 적은 소고겐큐(綜合硏究)대학원(52억엔)의 약 189배다. 그 뒤를 이은 교토대도 재산이 4140억엔에 달하는 등 일본 국립대학법인 사이의 빈부격차는 상당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국공립대 재편․통합과 경영원리 도입

일본의 국립대들은 독립법인화 이외에도 학교간 재편․통합을 통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추구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두뇌한국21(BK21)을 벤치마킹한 COE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대학간 무한경쟁을 통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야마나시(山梨)대과 야마나시의대, 쓰쿠바대와 도서관정보대가 통합된 이후 현재까지 20개 대학이 10개로 통합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국립대학은 99개에서 89개로 줄어들었으며 재편․통합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재편․통합 뿐만이 아니다. 문부성은 2003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가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폐지를 건의했다.

한편 대학 스스로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 경영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히토츠바시(一橋)대의 경우 증권회사 출신의 세키 쇼타로 와세다대 부총장을 영입하는가 하면, 도쿄대는 자본금 1천만엔의 기금 운용사를 설립해 여기서 얻는 이익으로 대학의 연구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도쿄대는 이 기금을 올해 안에 100억엔 규모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국립대 개혁은 이제 시작단계다. 경쟁원리에 따른 다양한 개혁이 성과를 거두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일본의 고등교육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모습은 비슷한 위기에 봉착한 우리나라 고등교육에 참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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