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강대는 토크콘서트 ‘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를 학칙에 위배되는 정치활동이라는 이유로 불허해 논란이 된 바 있다(『대학신문』2012년 9월 24일자). 이처럼 학생들의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학칙이 학원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비민주적 규제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정진후 의원(무소속)이 전국 4년제 180개 국·공·사립대학의 학칙 및 학생 관련 규정을 분석한 「대학민주화 실태진단 - 대학구성원 학교운영 참여를 중심으로」정책자료집을 바탕으로 대학들의 학칙 실태를 분석해봤다.

사전승인제 등 비민주적 조항 많아

현재 대부분의 대학 학칙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활동에 대한 사전승인 조항이다. 180개 대학 중 134곳(74.4%)이 사전에 본부로부터 승인 받지 않은 학생 집회를 금지하고 있고 학생의 광고, 게시물에 대해 사전승인을 요구하는 학교도 131곳(72.8%)에 달했다. 또 141개 대학(78.3%)에서는 학생단체조직 결성을 위해 대학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학칙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 정치 활동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갖고 있는 학교들도 적지 않다. 정당이나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학교는 62곳(34.4%), 집단적 행위·농성 등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교의 경우는 100곳(55.6%)에 달했다. 이외에도 142곳(78.9%)에서 학생지도위원회 등을 둬 학생회 활동을 지도·규제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학칙을 위반할 경우 받게 되는 징계에 관한 조항들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대학신문』이 서울소재 30개 대학 징계규정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개 대학에서만 징계학생의 출석 및 변론 기회를 부여하고 있었다(『대학신문』2011년 9월 5일자). 학교 측의 일방적인 입장에 따라 학생 징계가 진행돼 민주적 절차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80개 대학 중 98개 대학(54.4%)이 징계 제적된 학생에 대해 재·편입학(타학교 징계자 포함)을 금지하고 있다.

그래픽: 강동석 기자 tbag@snu.kr

 

서울대는 학생들에 대한 비민주적 규제가 다른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는 「학생회 및 학생단체지도 규정」에 지도위원회가 학생활동을 관장하는 조항(제6조) △학생회 및 학생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승인된 단체 이외의 조직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조항(제12조) △학생회 및 학생단체는 설립 목적을 위반할 경우 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제13조) 등이 아직 남아있다. 현재 학생회 측과 학교 측 모두 학칙에 대해서 큰 문제를 삼고 있지는 않고 있다. 부총학생회장 이주용씨(자유전공학부·09)는 “학교가 학칙을 내세우며 학내 학생회 주관의 정치적 활동을 막고 있지는 않아 학칙을 둘러싼 문제는 크게 없다”고 말했다.

학도호국단학칙의 잔재… 잠재적 문제로 남아

현재 상당수 대학에 남아 있는 비민주적인 학칙들은 유신시절에 제정된 학도호국단학칙에서 유래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학생활동에 대해 학교 측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조항, 학생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하는 조항 등은 대부분 유신정권 당시 학도호국단학칙과 유사하다. 이번 자료를 내놓은 정 의원은 “군사독재정권 당시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됐던 학칙의 독소조항이 오늘날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이 피교육자의 신분인 이상 대학 측에 의한 어느 정도의 규제와 지도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 학생과 정기현 사무관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성인이고 자신 스스로가 판단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교 측의 규제를 거부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면서도 “그러나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들은 교육의 대상이므로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대학은 많지 않지만, 학칙이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학생자치 탄압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지난 6월 아주대는 교수가 논문을 중복 게재했다는 내용의 내부 비리를 인터넷에 올리는 등 학교 외부로 알렸다는 이유로 대학원생 정모씨를 상벌위원회에 회부했다. 허가되지 않은 게시물을 게시한 것을 규제하는 학칙이 적용된 것이다. 또 작년 10월 목원대에서는 학생들이 추진하려한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대학측이 승인하지 않아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국대학생연합 정용필 의장(경희대 기계공학·06)은 “예전에 만들어졌던 학칙들이 형식적으로 이어져 지금 우리 사회와 맞지 않는 것이 많다”며 “학생들이 관심을 모아 학칙 개정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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