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이 다가옵니다. 진보 진영의 후퇴와 더불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자간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3자 중에서 오래 전부터 대선 유력 주자로 분류됐으며, 그래서 당연히 대권에 도전하리라 예상됐던 박근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박근혜는 1998년 국회의원이 된 후 항상 대선 근처에 있던 여성입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박근혜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몇몇 여성주의자들이 박근혜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습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주된 논거는 박근혜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에게 유리한 일정한 현실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박근혜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보냈던 최보은은 “만약 박근혜 의원이 대권에 도전하여 당선되지 않더라도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린다면 여성정치에 보수적인 대중들의 정서에 대단한 ‘상징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 그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이미경 의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습니다”와 같은 인터뷰를 하며 박근혜가 지닌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다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여성주의 내부에서, 그리고 여성주의자들과 진보 패널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여성주의가 아니라는 반박에서부터, (주류)여성주의란 원래 그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10년이 지난 오늘, 진보를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근혜를 지지했던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오판했다는 데 동의하는 듯합니다.

한편 박근혜를 둘러싼 지금의 논의를 보면, 그녀가 좋든 싫든 ‘여성’이라는 데 주목했던 과거의 첨예한 다툼은 잊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많은 논객들은 그녀의 성별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녀가 무슨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어떤 역사적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그녀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희진은 더 나아가 한 칼럼에서 “박근혜 후보는 여성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거나, 박근혜의 생물학적 성을 외면하는 것은 젠더와 섹슈얼리티라는 여성주의 본연의 영역 자체를 후퇴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박근혜에 대한 여성주의적 입장은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점에서 출발해 구성돼야 합니다.

정희진은 같은 칼럼에서 “[박근혜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다”라고 합니다. 정희진에 따르면 박근혜는 “공주이지, 여성도 시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주는 여성이 아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통상 한국 여성들은 딸-아내-어머니로의 이행을 겪으며 한 번도 여성으로서 주체화되지 못합니다. 언제나 남성(아버지-남편-아들)을 위한 감정노동과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사물’일 뿐입니다. 박근혜는 그런 전형성 중 하나로서의 ‘딸’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므로 그녀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박정희의 딸이므로 그녀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딸이라는 사회적 지위에 가해지는 구조적 억압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 아니라서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가 바라는 여성이라서 문제입니다. 가부장제가 지속되는 한, 딸들은 여성으로서 주체적 말하기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위치에 머무를 것이며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딸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 시도는 물론, 딸이므로 시민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 행위 역시 가부장제에 타격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딸에게 여성으로서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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