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문을 구하라
세일러문을 구하라
  • 김은정 사진부장
  • 승인 2012.10.14 0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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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쯤 먹었을 무렵 오후만 되면 텔레비전 앞에 얌전히 앉아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 중 가장 많이 봤던 애니메이션은 단연 『세일러문』이었다. 여러 명의 소녀가 나와 악당을 무찌르는 그 모습에 나는 혼을 빼앗길 듯 빨려들었다. 그로부터 10년가량이 지난 지금, 다섯 살 아이가 보던 애니메이션을 다운받은 몇몇 사람들은 경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동청소년법 위반이 의심되니 경찰서로 출두하라는 전화였다.

최근 아동청소년법을 개정해 청소년과 관련된 포르노를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 하는 것, 심지어는 컴퓨터 하드 내에 소장하고 있는 것까지 단속하겠다는 검찰의 발표가 있었다. 음란물을 보면 성 충동이 생겨 성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속을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음란물을 내려 받은 후 바로 지웠거나 교복을 입은 성인배우가 나온 경우, 초범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정된 아동청소년법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벌써 애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고 어처구니없는 단속으로 경찰서를 들락날락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복이 등장한 애니메이션을 다운받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출두명령을 받은 이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 것인가. 또한 p2p사이트에서 다운받은 몇 달 전의 자료 외에 기억도 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해명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 것인가. 이 사람들의 항의에는 성적 유추가 가능할 경우 음란물로 간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모든 음란물을 단속하는 것도 아니고 몇몇 아동청소년에 대한 음란물만을 단속하겠다는 검찰의 의지는 표면적으로는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매우 어처구니없는 대책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내놓은 법안으로 성범죄자 혹은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잡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무고한 사람들도 여럿 잡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주폭을 막기 위해 술자리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술을 적게 마시라고 법에서 규제했다고 해서 주폭이 줄어들리 만무하다. 새로 개정된 아동청소년법은 술을 마신 사람들을 아무런 기준 없이 처벌하는 것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취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무작위 처벌은 잠시동안 사람들이 음란물을 보지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다른 경로로 음란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미 다운을 받지 않고 실시간 동영상 재생을 통해 음란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해 영상물 규제 이외에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영상에 대한 처벌을 시행한다고 해서 성범죄가 줄어들리 만무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예방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사건의 발생 횟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생색은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는 진정한 ‘대책’이 아니다. 음란물 소지죄로 많은 사람들이 처벌을 받게 되면 실적이 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뜬구름 잡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생색내기 예방 대책은 성범죄율이 떨어지는 데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쪽 면만 보고 내놓은 어이없는 예방책은 결국 예방책이 아니다. 결국 이번에 세상에 나온 아동청소년법은 애꿎은 사람들을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을 뿐, 그 이상의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세일러문을 즐겨보던 내가 느닷없는 불안을 겪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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