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 화나는 일들을 속에 담아두기만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그런데 요즘 한국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 스트레스를 푸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에도 몇 번 보도된 바 있는 트위터의 ‘대나무 숲’ 열풍이 그것이다. 사회 각 분야의 사람들이 같은 트위터 계정을 공유하며 자신이 당한 억울한 경험과 암담한 현실을 토로하고, 또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한 출판 노동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출판사 옆 대나무 숲’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이제 인문계 대학원생, 신문기자, 국회 보좌관, 영화 스태프, 중·고등학생, 백수, 심지어 성노동자들에게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현재까지 내가 본 것만 80개가 넘는 대나무 숲 계정이 만들어졌는데, 그 중 상당수는 애초에 활발하게 공유되다가 지금은 거의 활동이 없는 상태다. 처음보다는 그 열기와 관심이 상당히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몇몇 대나무 숲 계정은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정착될 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인터넷의 반짝 흥밋거리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나무 숲 계정에 올라오는 글은 140자로 압축된 무수한 삶의 조각들이다. 종종 그 글들을 읽을 때면 귓가에서 대나무 이파리들이 서로 몸을 부비대며 내는 소리를 듣는 듯 한 착각이 든다. 한 사람의 목소리인 듯 같은 고민을 토로하다가도, 이내 그 목소리들은 여러 개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경쟁하다 또 갑자기 잠잠해지곤 한다. 오히려 그 일관성 없음이 정말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대나무 숲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항상 옳지도 않고, 그들의 억울함, 분노에 늘 공감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종종 그들은 감정 과잉이고 세상에 미숙할 뿐이다. 때로는 그들이 고발하는 대상들에 오히려 동정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나무 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타인에게 말 걸고자 하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적인 욕구인가 하는 사실이다.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속내를 어쩌지 못해 정말 대나무처럼 마음이 텅 비워졌을 지도 모를 그들이 가여우면서도, 울창하고 푸른, 거친 바람에도 꿋꿋한 대나무 숲으로 그 목소리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꿈꾸게 된다. 같은 목소리 안에서 다른 생각이 조화가 되는 그런 세상,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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