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열풍이 불기 이전인 90년대 중후반까지 담배는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피울 수 있었다. 간접흡연의 위험성까지 강조되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CCTV의 확대와 각종 호신 장비의 판매 급증에서 보듯 건강과 안전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커졌다. 그런데 관심이 고르게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주변의 담배 연기에는 분노하지만 그래서 흡연을 금지하려는 노력에는 적극 찬성하지만,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구미에서 불산 유출사고가 났다.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수백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정부는 해당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번 사고에서 정부가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해당 업체가 불과 3년전 이와 유사한 사고를 냈으며, 이후 처벌은 커녕 우수관리업체로 표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번 불산 사고는 노동자의 안전이 곧 공동체 전체의 안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기업체가 법규를 준수했다면, 따라서 노동자들이 안전을 보장받으며 작업할 수 있었다면 유출 즉시 사고를 막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5명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생명 모두를 지켰으리라. 그러나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업체는 법을 위반했고, 정부는 묵인했으며, 노동조합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처럼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되는 비극적 현실은 사고 이후 주변 공장들이 노동자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채 가동을 계속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간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던 움직임의 면모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유명 회계법인의 회계 ‘오류’에 기반한 정리해고 결정과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경찰특공대의 투입이 이뤄졌던 쌍용차. 청와대, 지경부, 경찰이 합동 회의를 통해 와해 작전을 펼친 발전 노조. 경총 출신이 대표로 있는 노무법인은 불법으로 노조 파괴를 ‘컨설팅’하고, 여당의 지도위원 출신이 회장으로 있는 경비용역업체는 민간군사기업을 자임하며 쟁의 중인 노동자들을 폭행한다. 가히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어벤저스’를 보는 듯하다. 2012년 한국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동조합은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당으로 간주당하고 있다.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위험에 대해 눈감으면서, 가시적인 인물과 행위 차원의 위험에만 주목하는 요즘의 행태는 안전에 대한 심각한 착시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트위터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 계정의 트윗을 RT한 것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한 것으로 간주돼, 압수수색을 당하고 징역 2년을 구형받는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않았던 검찰이 실패한 농담은 대한민국을 위협한다고 여긴 것일까. 국가의 안전을 걱정하여 검찰은 공안 3부를 신설하며 자신들의 덩치를 더 부풀리고 있다.

안전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서, 정작 안전이란 무엇인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지켜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생략된다. 이제 자신의 취향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협이 선택되고 규정된다. 사람의 안전을 위한 노력이 국가의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당하는 곳에서, 당신의 안전은 없다.

김경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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