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할머니는 무엇으로 사는가

천씨 할머니와 동행한 하루

천씨 할머니(90)가 낙성대동(구 봉천7동)에 산 지는 30년이 다 돼 가지만 오늘도 할머니의 하루는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다. 토요일 아침 8시 30분, 천씨 할머니는 박스 한 카트를 관악구청 맞은편의 고물상에 맡긴다. 할머니는 앉아서 숨을 한참 고른 뒤 9시경 다시 카트를 끌고 길을 나선다. 큰 길 뒤편 시장 바닥을 천천히 살피며 걸었지만 한 시간 반 남짓 동안 주운 박스는 두 개 뿐이다. 할머니는 카페 계단 앞에서 삼십분 정도 앉아서 쉬다 큰 길가를 또 한참 동안 살핀다.

기자가 할머니와 동행한 것은 약 5시간. 그동안 할머니가 이동한 거리는 2.11km로 성인 남자가 30여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하루에 대여섯번은 쉬어야 할 만큼 떨어진 체력과 무거운 카트, 굽은 허리 때문에 할머니가 젊은 사람의 속도로 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머니의 이동반경의 중심은 관악구청 앞 큰 횡단보도로, 건너편 뒷골목을 왔다갔다하거나 멀게는 낙성대 시장의 끝이나 봉천역 방향 큰 길가까지 가기도 했다. 박스를 줍는 간격은 인접한 가게에서 박스가 나올 경우 2-3분이지만 허탕을 치면 길게는 한 시간이 넘었다. “다른 사람들은 맡아놓고 주는 데가 있다는데…….” 챙겨주는 가게가 없는 할머니는 매일 남보다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렇게 5시간 동안 채운 카트를 가져가 받은 값은 600원. 캔을 가져오면 돈을 조금 얹어 800원을 받는다. 하루에 몇 번씩 다닌다고 해도 몇 천원 이상 벌 수 없는 양이다. 할머니는 기자가 건넨 두유를 점심 대신으로 맛있게 드시고는 “우리 집에 가서 놀다 가”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오랜만에 이야기할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하시는 걸 보아, 다소 외로운 눈치였다.

천씨 할머니도 항상 폐지를 줍던 건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도 고흥에는 농사짓고 살던 땅도 있었다. 하지만 50살이 되던 해 남편이 세상을 뜨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여자 혼자 농사를 짓느라 여기저기 빚을 졌고, 매일매일 찾아와 때리고 약을 올리는 빚쟁이들의 행패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해 서울로 몰래 야반도주한 것은 할머니가 60살이 될 무렵이었다.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버는 돈은 한 달에 15만원 이하지만 자식이 생활비를 보내주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외아들이 하나 있지만 아들이 대학을 그만둔 후 연락이 끊겼다. “어디로 흘러들어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겠어.” 할머니는 현재 낙성대시장 골목의 주택집 셋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요즘 들어 할머니는 먹고 살 길이 더더욱 막막해졌다. 불황으로 폐지 가격이 4분의 1 이상 폭락해 수입이 끊기다시피 한 탓이다. “남들보다 잘 줍지도 못하는데 앞으로 먹고 살 것도 없고, 저번 달에 월세 냈는데 벌써 한 달이야.”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할머니에겐 말벗도 별로 없다. 추워진 날씨, 줄어든 일감 등 걱정거리는 태산같이 늘었지만 할머니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악구는 서울의 25개구 중에서 구로구, 영등포구 등과 함께 폐지수거를 하는 노인들이 가장 많은 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관악구에는 천씨 할머니와 같은 ‘폐지 노인’들이 정확히 얼마나 있으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폐지수거노동의 실태를 보다

지역단위 정책연구소인 관악정책연구소 ‘오늘’(오늘연구소)이 발표한 「관악구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의 생활실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관악구에서 폐지 수거노동을 하고 있는 노인들의 수는 총 900명 정도로 추정된다. 동 숫자(21개동)로 나눠봤을 때 동별로 평균 약 48명의 노인들이 폐지 수거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연구소는 2010년 9월 29일부터 한 달 간 관악구에서 폐지 노인 1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도출했다.

연령대는 75세~79세 구간이 가장 많았으며 70대 이상 고령자 비율은 전체의 77.9%(99명)에 달했다. 성별은 여성이 70.1%(89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오늘연구소는 이를 노령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 폐지 수거노동이 여성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일이라는 점, 체면 등의 이유로 면접에 응하지 않은 남성노인이 많은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폐지 노인들은 저하된 노동능력에 비해 상당히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노인들이 36.2%(46명)나 됐다. 가게나 가정에서 폐지가 시간상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서 배출되므로 수거 구역을 하루 종일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 7일 노동을 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명절(설날, 추석)을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노인들이 60.8%(76명)나 됐다. 고물상에서 만난 박씨 할머니(62) 역시 “하루에 몇 천원 버는데 밥이라도 먹으려면 어떻게 쉬느냐”며 일을 쉬면 경쟁자들에게 수거 구역을 뺏긴다고 하소연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고물상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10분에 두세명 정도의 노인이 다녀갔다.

노인들은 이렇게 모은 폐지를 팔아 대부분 월 20만원에도 못 미치는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으로 얻는 수입이 ‘월 20만원 이하’가 68.5%(87명), ‘20~30만원’이 15.7%(20명), ‘30~40만원’이 6.3%(8명)로 월 평균 40만원 이하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비율은 90.6%였다. 고물상 오광자원의 사장은 “대부분의 노인들이 한 달에 20만원도 못 번다”며 “요즘은 폐지 가격이 너무 내려서 더 적게 번다”고 이야기했다. 노인들이 버는 금액을 일 단위로 환산하면 하루 1만3천원 미만을 버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한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100kg씩 폐지를 수거해도 수입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57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폐지 수거 노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계 유지’라고 대답한 비율은 58.3%(74명)이었다. ‘생계 유지’를 꼽은 노인 중 다른 직업을 가진 경우는 9명으로 시설관리, 우유배달, 공공근로 등의 부업을 하고 있었다.

폐지 수거시 맨손으로 카트나 리어카를 미는 경우가 많아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수거하는 도중 상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1.7%(53명)로 나타났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쳤다는 응답(19명)이 가장 많았고, 손·발목 등을 삐었다(15명), 손을 베였다(12명) 등의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다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은 13명이다. 어지럼증, 당뇨병 등으로 일을 하다 쓰러진 경우와 카트 충돌로 다친 경우도 있었다. 고물상에서 만난 최씨 할머니(64)는 몇 달 전 저녁에 오토바이에 치어서 발목이 불편하다. 할머니는 “뒤에서 빵 하더니 그냥 그렇게 치였어”라며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욱신거려 오래 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삽화: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폐지 노인들

‘보편적 복지’ 를 말하지만

“영세민 지원(기초생활수급) 받으세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천씨 할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노인들이 받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놀랍게도 오늘연구소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폐지 노인들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겨우 12%(15명)에 불과하다. 조사에 응한 폐지 수거 노인의 나머지 87.4%(111명)는 대다수가 극빈층에 속해 있음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연구소 이봉화 소장은 “국내 복지제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수급자 선정인데 이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들도 많았다”며 “이들이 비현실적인 복지제도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폐지 노인들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양의무자 제도는 직계가족인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부양비를 주는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자(자녀)의 소득에서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액수의 30%를 ‘간주부양비’로 책정하고 있다. 이 간주부양비가 최저생계비보다 많으면 자녀가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수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노인들은 자녀들로부터 실제로 부양비를 받지 않아도 부양비를 받는 것으로 간주돼 수급대상에서 탈락하게 되는 것이다. 천씨 할머니 역시 수급 탈락 이유에 대해 “자식이 있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전혀 받는 게 없냐는 물음에 천씨 할머니는 “동사무소에서 매달 9만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70%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노인들의 최저생계 안정이라는 목적과 달리 지원액이 매월 최대 9만4천원 정도로 미미해 흔히 ‘교통비 지원’으로 많이 불린다. 이마저도 부부 수급자의 경우 가계를 같이 꾸려간다는 이유로 20% 감액돼 최대 15만1,400원밖에 지급받지 못한다. 만약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면 기초노령연금 9만원 정도가 정부로부터 받는 생계비의 전부인 셈이다. 2009년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실질적인 형편이 기초생활수급자와 다름없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의 간주부양비 때문에 탈락해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약 103만명(60만가구)으로 추산된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부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지만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전망은 밝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19대 국회 개원 이후 부양의무자 기준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총 세 번 발의됐지만 모두 본회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김은정 간사는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것은 예산문제가 가장 크다”며 “보편적 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최저생계 보장과 같은 빈곤대응의 중요성은 오히려 간과되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부양의식은 지속적으로 약화돼 왔다. 통계청의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2002년에는 국민의 70.7%가 노부모 부양책임이 가족에 있다고 인식했으나 2010년에는 이러한 인식이 36%로 급감했다. 사회보장제도가 가족기능의 약화 등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 간사는 “국민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야 할 기초생활수급제도는 재정적인 이유로 국가보다 가족에게 1차적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우리 삶에서 가족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가족의 경제적 부양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빈곤층을 비수급 상태로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폐지 노인들을 위하는 길은

진짜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관악구에는 2012년 기준 노인일자리 1,012개가 운영되고 있다. 각 복지관 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전통문화강사 △서예지도 강사 △숲생태해설사 등의 교육형 일자리나 △독거노인 의류세탁 △급식도우미 등의 노동형 일자리가 그 예이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폐지 노인들은 “나같이 못 배운 사람이 무슨 선생을 해”, 또는 “폐지를 주워도 하루에 대여섯 번은 쉬는데 제복을 입고 몇 시간씩이나 청소를 어떻게 계속 하나”등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자리들이 요구하는 교육수준이나 신체 능력이 할머니들과 같은 저소득층 고령 노인들에게 전혀 맞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소장은 “서울시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생활형편이 어렵지 않은 중산층 노인을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며 “적은 급여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목적 역시 생계 유지가 아닌 중산층 노인들의 사회봉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부분의 노인 일자리들은 6개월 단위로 운영되며 20만원 정도의 평균급여수준을 10여년째 유지하고 있다. 지속적인 수입이 보장되지도 않으며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봉사’ 수준의 일자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나마 노인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폐지수거 노동도 위태로운 수준에 있다. 지역의 폐지수거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고물상들이 곧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림동 광성고물상 김홍조 사장은 “정부는 폐기물 처리 일원화를 위해 지속적인 불이익을 가하는 등 장기적으로 소규모 고물상들을 없애려 하고 있다”며 “우리의 생계도 문제지만 아무런 대안적 조치 없이 고물상을 없애는 것은 우리가 먹여살리고 있는 이분들의 생명줄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인력 확충으로 현장성 강화해야

폐지 노인 문제에 대해 오늘연구소 최복준 연구원은 복지계의 사각지대 발굴 노력이 소홀함을 지적한다. 각 동사무소나 복지단체들의 상시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노인들에게는 혜택이 중복되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에 대한 발굴 노력은 없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이를 “복지관마다 지원하는 저소득층 노인의 ‘명단’은 각각 어느 정도 다르고 중복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명절이면 한 노인에게 쌀, 김장, 라면, 명절음식이 한꺼번에 도착한다”며 “노인들의 명단은 항상 그대로이기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노인은 명절에도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우리나라 복지전달체계의 전형적인 문제점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 전달체계가 잘 관리되지 않아 구석구석 닿지 않고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혜규 연구실장은 “이런 상황은 교차점에 있는 대상자에게 중복 수혜를 주는 반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는 전혀 혜택을 주지 못한다”며 “현장 조사를 통해 복지전달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강혜규 연구실장은 현장서비스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동당 사회복지전담 공무원 인력을 크게 증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담당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1인당 평균 152명으로 수요자의 개별적인 욕구를 파악하기엔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이다. 실제 폐지 노인이 가장 많은 동 중 하나인 관악구 삼성동(구 신림6·10동)의 경우 912명의 기초생활수급자를 두 명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으며 폐지 노인이 많은 또다른 동인 청룡동의 경우 한 명이 485명을 담당하고 있다. 가구방문, 민원 처리, 수급자조건파악, 상담과 정보안내, 행정업무를 모두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청룡동 주민센터의 한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은 “최근 행정업무가 오히려 늘어나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하다”며 “사각지대에 계신 정말 어려운 분들을 돕기 위해서는 수요자 욕구 파악을 위해 증원된 인력과 실질적인 업무 완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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