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학회의 간사로 일하고 있을 때 한꺼번에 밀려오는 일을 견디다 못해 사고를 친 적이 있다. “대학원생은 봉이 아닙니다”로 시작하는 당돌한 이메일을 당시 학회 이사를 맡고 계신 교수 몇 분께 보낸 사건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좌절감이 절절하다. “우리가 계속 이런 식으로 취급된다면 국내 대학원생은 학문 후속 세대가 결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불편한 편지를 나는 왜 다시 꺼내보았을까?

지난 10일,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문을 열면서 학생들의 인권 실태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다. 단골 메뉴도 있었지만 “교수의 애완견에 밥까지 줬다”는 증언이 나오자 발표장이 한때 술렁거렸다. 꽃다운 20~30대를 관악에서 보내며 그들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것일까?

물론 학생의 인권 침해가 우리 대학에 만연해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학생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객관적으로도 학생의 복지 수준은 꾸준히 향상되어 왔다. 10년 전만 해도 매달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받으며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은 귀족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때마다 “요즘 학생들이 배가 불러서 그래”라며 살짝 눈치 없이 말하는 분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이래서 문제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객관적으로 복지는 더 좋아졌는데 왜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는가 말이다.

학생을 대하는 교수의 ‘태도’에 그동안 중대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 한국의 교수 사회도 지난 10년은 대변혁의 시기였다. 문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연구역량 강화나 국제화 지수 제고가 대학 사회의 최고 가치로 등극했고, 이에 교수들은 자신의 업적을 최우선시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교수는 자신의 업적 산출에 도움이 안 되는 학부 학생들을 다소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한편 업적 산출의 동력을 담당하는 대학원생들은 상사에게 쪼임을 당하는 사원처럼 인식되었다. ‘이제 학부 교육과 학부생 지도는 접고 연구 성과와 대학원생 관리에나 집중하자’는 내면의 다짐들이 들어왔고, 그 결과 연구 실적물은 실제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에 세계 대학 평가에서 서울대의 순위는 매년 상승했으며 이것은 다시 학생을 대하는 교수의 태도 변화에 양의 되먹임을 준다. ‘교육은 접고 연구에 전념할 것!’

그런데 문제는, 상승하는 이 지표들이 학부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학문 후속 세대의 주역을 꿈꾸는 대학원생의 좌절감 해소와도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이 수치들이 정말로 학생들에 대한 태도 변경을 통해 연구 성과 쌓기에 몰두한 교수들의 결과물이라면 지금은 심각한 대책 회의가 필요한 시점이리라. 연구를 최우선에 두는 현재의 가치 시스템이 지배한다면 머지않아 교수 사회는 학생에 무관심한 교수들로 가득 차게 되고 학부는 엉망이 될 것이며 결국 대학은 붕괴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써볼 수 있다. 정부와 학교가 교수의 연구 역량만큼이나 교육 강화와 학생 복지를 위한 노력을 정말로 중시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교수는 학부 교육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낼 것이고, 이에 감화 받은 똑똑한 학부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것이며,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교수의 지도를 듬뿍 받은 후속 세대들은 탁월한 학자로 커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수들이 그토록 원하는 탁월한 연구 성과도 이 선순환 구조의 ‘부산물’로 튀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학부 교육과 학생에 관한 교수의 ‘태도’가 변화되어야만 이 사이클이 시작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선순환 반응이 시작되면 대학 사회를 우울하게 만드는 교수와 학생간의 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풀리지 않을까?

장대익 교수
자유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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