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과정에 일반 시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올해로 시행 5주년을 맞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이란 형사재판에 법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 배심원도 판결에 관여토록 하는 재판의 한 형태이다. 이는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에서도 잘 표현된 우리나라의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사법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2008년 1월 1일 도입됐다.

그동안 국민참여재판은 나름대로의 성과와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아직도 많이 생소하다. 『대학신문』은 국민참여재판 5주년을 맞아 국민참여재판을 직접 방청해 보고 그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봤다.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진 법정

지난 10월 18일기자가 방청한 국민참여재판(2012고합312)은 서울북부지방법원(제11형사부) 제601호 형사중법정에서 개정됐다. 피고인 신모씨(남, 만 72세)가 2012년 6월 24일 사람이 있는 건물에 불을 놓은 혐의(현주건조물방화죄), 그리고 익일 평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임모 목사(60대 후반)를 향해 차량을 돌진한 혐의(살인미수죄)로 기소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재판이었다.

재판장의 유의사항 설명을 시작으로 공판절차가 시작된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공판 위주의 국민참여재판은 재판 하나가 하루종일 걸리기 때문에 오전 일찍 시작된다. 재판은 배심원의 선서, 검사·피고인·변호인의 모두진술, 증거조사, 검사의 의견진술, 변호인·피고인의 최종변론 순으로 진행됐다. 법정의 중앙에는 3명의 판사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속기사를 비롯한 법원관계자, 정중앙의 왼편에는 검사, 오른편에는 피고와 피고측 국선변호사가 앉았다. 검사석 뒷편에 마련된 배심원석에는 10명의 시민 배심원이 앉아 있었다. 유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는 배심원들의 표정에서는 엄숙함과 진지함이 감돌았다.

이날 참여한 배심원들은 북부지방법원 관할 지역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주민 중에서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들이다. 보통 200여명 정도에게 출석 통지서가 발송되며, 당일 오전 법정에 출석한 약 60~70명 정도의 사람들 중에서 사건 간접 관계자 등 추가적인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은 제외된다. 이번 재판에서는 총 9인의 배심원과 1인의 예비배심원이 추첨을 통해 최종 선정됐다.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10만원,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4만원의 일당이 지급되며 학생이나 직장인의 경우 결석·결근으로 인한 불이익이 없도록 법적인 배려를 받았다. 이들 중에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 배심원도 있는 반면 50대 초반의 주부 배심원도 눈에 띄었다. 배심원들은 재판 중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각각 1번에서 10번으로 매겨진 번호에 의해 호명된다.

삽화·그래픽: 선우훈 기자, 최지수 기자


사건의 주요 쟁점은 피고인이 불을 놓은 방화 현장이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곳이었는지, 그리고 임 목사를 향해 차량을 돌진한 행위에 고의성이 있었는지 여부였다. 피고인은 자신이 불을 놓은 곳은 일부러 사람이 없는 장소로만 고른 곳들이며, 차량을 들이받은 행위 역시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단지 자신이 원한을 품은 임 목사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설명이었다. 배심원들은 약 5시간에 이르는 긴 공판과정 동안 시종일관 집중해서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가 확인되는 동안 몇몇 배심원들은 사건에 대한 질문을 판사에게 쪽지를 통해 전달해 대신 물어보게끔 하기도 했다. 재판 내용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한 검사와 변호사의 적극적인 공방이었다. 두 측은 줄곧 배심원석을 바라보며 쉬운 용어로 설득하듯이 얘기했다. 차량 돌진이 고의였느냐 여부로 양측이 대립할 때 변호사는 사건 현장의 약도를 그려와 실물화상기로 비춰가며 설명했고, 검사측은 준비해온 증거자료를 프로젝터를 통해 모두에게 제시했다.

사법 과정을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려는 판사의 노력도 돋보였다. 판사는 배심원들이 법률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 자유심증주의 등의 기본적 용어를 파워포인트를 통해 설명해 주었다. 재판 도중 여러 사안이 얽혀 복잡해질 경우 배심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어려운 내용을 정리를 해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4시 30분부터 6시까지 진행된 평의 과정 동안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이 불을 지른 가건물에는 사람이 거주한다고 할 수 있으며(현주건조물방화죄), 피해자를 향해 차를 돌진한 행동 역시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판단이었다(살인미수죄). 판사도 배심원의 의견을 참고해 최종적으로 유죄 평결을 내렸고 징역 5년에서 8년까지 다양한 배심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6년의 양형을 선고했다. 이날 판결에 참여한 시민 배심원은 “일반 시민도 사법과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적 정착 가능할까

현행 국민참여재판은 영미식 배심제와 유럽식 참심제를 혼합한 독자적 형태의 시민참여재판이다. 배심제는 배심원단이 독립적인 평결을 내리고 법관이 그 결과에 구속돼 재판하는 제도를 말하는 반면, 참심제는 시민 배심원이 평결을 내리지는 않지만 검사, 변호사와 함께 재판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사건에 대한 토의를 함께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단은 모든 절차를 지켜보고 독자적 평결을 내린 뒤 판사는 이를 고려해 최종 판결을 내린다. 이때 배심원단의 평결은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판사는 이와 상반되는 판결을 내릴 경우 반드시 판단의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국민참여재판은 지난해까지 모두 1,490건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574건(38.5%)이 법원에서 실제로 시행됐다. 이는 2008년 64건, 2009년 95건, 2010년 162건, 2011년 250여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실시율이 전체 대상 사건 중 1.6%에 불과하고 국민의 참여 열기가 높지 않은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하지만 사법계에 대한 불신을 줄이고 재판 과정에 민주적 참여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현행 국민참여재판은 제1단계 국민참여재판제도로 2012년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지난 2008년 1월 1일 사법개혁위원회가 국민참여재판을 처음 도입할 때 국민참여재판 시행 5주년차인 2012년 이후 국민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배심제, 참심제, 혼합 형태 중)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지난 7월 대법원에서 국민사법참여위원회가 출범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대법원이 설치하는 위원회는 그동안의 국민참여재판의 시행성과를 분석하고 국민참여재판의 확대 여부와 최종 형태를 결정한다. 위원회는 △참여재판의 기본 형태를 배심제와 참심제 가운데 어떤 것으로 할지 △배심원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할 것인지 △피고인이 신청해야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도록 하는 ‘신청주의’를 유지할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향후 국회 법안 통과 일정 등을 고려하면 위원회는 늦어도 올해 말까지 새로운 참여재판 모델의 최종안을 마련해 입법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거재판주의: 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에 의하여 행해야 한다는 원칙
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기는 주의
기속력: 법원이나 행정기관이 스스로 한 재판이나 처분에 구속돼 자유롭게 취소·변경할 수 없는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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