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재단 설립 봇물, 내실은 없어
지역문화재단 설립 봇물, 내실은 없어
  • 최학모 기자
  • 승인 2012.10.21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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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이 지역문화재단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1일(목)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26개의 문화재단이 신설돼 올 3월 기준 총 45개의 문화재단이 전국적으로 설립·운영 중이다. 또한 내년 1월에는 군포문화재단이 출범이 예정돼 있는 등 지역문화재단 설립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문화재단

각 지자체에서 계속해서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가 보다 실질적인 문화예술 진흥사업을 벌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양우 교수(중앙대 예술경영학과)는 “최근 급증하는 주민들의 문화적 수요는 지자체 내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지역문화재단은 문화계 전문가들이 모여 문화정책을 마련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역특성에 적합하고 실제적인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진행하기에 알맞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문화재단이 설립될 경우 정부가 지자체에 문화예술 관련 재정과 운용권한을 이양하는 것도 지역문화재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이유다. 현재 정부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정책 효과가 일어날 수 있도록 문화재단 설립지역에 중점적으로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지방분권화의 일환으로 지자체가 지역문화재단을 설립할 경우 지방의회에서 지역문화재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관련재정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픽: 선우훈 기자 mrdrug@snu.kr


갈 길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문화재단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재단이 재정부족이나 전문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은 지역예술인과 직접 접촉하고 그와 관련된 예술정책을 수립해야 하지만 운영상 편의를 위해 예술정책 수립보다는 시설관리에 중점을 둔 채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 문화재단이 지출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설립된 강남문화재단은 작년 한 해 문화예술 진흥사업비에 예산의 단 23.2%만을 지출했으며, 고양문화재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도 고양문화재단은 전 예산의 30.9%만을 문화정책 개발과 문화예술산업 활성화에 배정했다. 고양문화재단 문화정책실 오석영 대리는 “재단이 지역예술발전을 최우선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재정이 부족해 현재는 문화정책수립보다는 예술극장 운영 및 관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문화재단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문화재단 대다수는 운영과정에서 재정의 대부분을 국고나 지자체의 보조에 의존하고 있다. 문광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 지자체 문화재단 중 재정자립도가 50%를 넘는 곳은 3월 기준 45곳 중 9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재정자립도가 낮은 경우 창작과 문화향유 지원이라는 문화재단 본 목적에 소홀해질뿐더러 문화재단이 지자체의 행사나 홍보 대행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제기된다. 마포문화재단 김성수 사업기획본부장은 “문화재단의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간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며 “마포문화재단은 재정자립도가 71%로 타 지역보다 높은 편임에도 구청이 나머지 29%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감사권을 갖고 업무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인사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문화재단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경우도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부천문화재단에서는 전 직원의 25%가 당시 이사장이었던 홍건표 전 시장의 친인척, 시의원 자녀, 공무원 자녀 등으로 꾸려져 특혜인사가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성남문화재단은 2005년 설립 직후 시장 및 시의원 측근 인사 및 정년퇴직 공무원 등이 관리직으로 임용돼 인사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분분했다. 현재에도 전국 문화재단 45곳 중 8곳을 제외한 나머지 37곳에서는 지자체장이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문화재단이 바람직하게 나아가기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안정성과 재단의 행정적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양우 교수는 “문화행정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 즉 정부 불간섭주의에 의거해 민간 주도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문화재단의 설립취지에 맞춰 지역예술인 지원 및 주민 문화향유도 증대, 지역문화의 정체성 확립 등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단이 자체적으로 문화정책 개발과 사업 활성화에 보다 힘써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199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의 지역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재정자립도를 높인 모범사례다. 지난 5월에는 남한산성 행궁 복원사업을 마무리 짓는 한편, 8월에는 고문헌을 토대로 경기 광주의 특산물인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해장국 효종갱(曉鐘羹)을 복원하는 등 경기문화재단은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편 2004년에 설립된 서울문화재단은 축제형식을 통해 예술가와 주민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문화정책과 사업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지역문화재단 본래의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6월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과 8월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각각 19대 국회에 대표 발의한 지역문화진흥법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문광부에서도 2013년도 예산안에 지역문화재단 역량강화 사업을 반영해 지역문화재단이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주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앞으로 전국의 지역문화재단들이 체계적인 법령과 재단 지원사업을 토대로 지역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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