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밴드 '4번 출구' 리더 한찬수 씨

“안녕하세요? 뵈는 게 없는 밴드 ‘4번 출구’입니다!” KBS 오디션 프로그램 ‘탑밴드 2’의 무대에 오른 시각장애인 밴드 4번 출구의 첫 인사였다. 3차 미션에서 패닉의 「달팽이」를 불러 관중의 마음을 울린 밴드 4번 출구는 이미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스타로, 인디 밴드 사이에서는 실력파 밴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당동의 한 연습실, 5명이 모여 연습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좁은 방에서 4번 출구의 리더 한찬수씨를 만났다.

무지개색 4번 출구의 탄생

“4번 출구의 원년 멤버로서 밴드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한찬수씨는 51세의 나이로 벌써 7년째 4번 출구를 책임지고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의 삶은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리면서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이었지만, 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재활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바로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아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재활이 되자마자 복지관의 취미프로그램에 참여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한찬수씨는 “그곳에서 4번 출구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웃음지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던 취미프로그램의 멤버들과 우연히 합주를 해본 한찬수씨는 어설프게나마 밴드를 결성해보기로 했다. ‘실로암 밴드’라는 이름으로 복지관 내에서 소소하게 활동하던 그는 이윽고 전문적인 밴드를 꾸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고가의 악기와 장비들을 마련할 처지가 안 돼 밴드 결성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그는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에서 한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그는 “회사원이었던 봉사자가 다니던 기업에서 마침 국내 시각장애인을 도우려는 사업을 구상 중이었다”며 기막힌 우연을 소개했다. 자원봉사자로부터 한찬수 씨의 사연을 전달받은 회사는 ‘실로암 밴드’가 ‘4번 출구’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악기와 장비를 전부 지원했다. 이때가 2006년 4월로, 그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한 때였다”라고 회상했다.

4번 출구라는 독특한 이름에는 ‘4’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에서 탈피해 장애에서 희망으로 ‘출구’를 찾아 나서겠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멤버 모두가 시각 장애를 가진 4번 출구는 61년생부터 86년생까지 연령대가 무척 다양하다. 그와 멤버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연령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것은 나이뿐만이 아니다. 음악적 취향도 멤버별로 제각각이다. 그는 “덕분에 4번 출구가 헤비메탈부터 감미로운 음악까지 다양한 범주의 음악을 다룰 수 있게 됐다”며 “4번 출구의 색깔은 무지개색이고, 오히려 이것이 우리의 장점인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그들만의 출구를 찾기까지

“시각 대신 멤버들의 청각이 고도로 발달된 것이 우리 밴드의 특색”이라고 자랑하는 한찬수씨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멤버들 대부분이 직장인이었던 밴드 결성 초창기에는 생계가 4번 출구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려니 연습량을 늘려야했고 직장 때문에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무대에도 오르지 못하는 멤버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결성한 지 1년 만에 첫 멤버가 빠져나갔다. “지금까지 6명의 멤버가 바뀌었고, 초창기 멤버는 2명만이 남았다”는 그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팠다”고 씁쓸하게 당시를 회고했다.

사진: 심수진 기자 jin08061992@snu.kr


호흡이 생명인 밴드 공연에서 멤버 전원이 시각 장애를 가졌다는 것 또한 큰 어려움이다. 악보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문제란다. 이 때문에 4번 출구는 한 곡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고 한다. 그는 “탑밴드 2의 3차 미션의 첫 곡 「달팽이」를 습득하고 연주를 준비하느라 두 번째로 선보일 예정이었던 자작곡은 연습조차 하지 못했다”며 “이 때 처음으로 4번 출구의 한계를 느꼈다”고 당시의 경험을 전했다. 라이브를 할 때도 제약이 따라왔다. 그는 “라이브를 할 때 마이크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등의 사소한 불편함부터 멤버들 간에 시선 교환을 통해 호흡을 맞추기도 어렵다는 점까지 시각 장애인 밴드로 활동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따른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한찬수씨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계속하고 싶단다. 4번 출구의 공연은 단지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색깔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공연”이라며 “그런 어려움들은 어차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들의 출구가 되기를

2006년 시각장애인 돕기 기금마련 콘서트인 「정오의 콘서트」에서 첫 공연을 선보인 이후, 4번 출구는 꾸준히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고아원, 양로원 등의 문화소외계층에게 공연을 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활동이자 목표다. 한찬수씨는 “2009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어려운 문화예술인을 위한 지원금을 받게 돼 문화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료공연으로 장애인 사회에서는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었지만, 비장애인들에게 4번 출구가 소개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런 그들이 단숨에 화제로 떠오르게 된 계기가 바로 지난 5월 방영된 ‘탑밴드 2’다. ‘TOP 30’까지 오르며 저력을 보여 준 4번 출구에 찬사가 쏟아졌지만 한찬수씨는 이를 “우리의 실력이 아직 부족함을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회상했다. 방송 이후 4번 출구에게는 “시각 장애인 밴드로서가 아니라 실력으로 인정받는 밴드가 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한다. 신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꿈을 이룬 사례로서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4번 출구는 11월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한찬수씨의 좌우명처럼 자선콘서트의 뜻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밝은 미래를 보고 있는 그와 4번 출구에게 탄탄대로가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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