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④

서울대에는 학교의 ‘명물’이라 불리는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 공간 안에는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다. 『대학신문』은 총 4회에 걸쳐 각 공간에 담긴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나눠보고자 한다.

연재순서
① 서울대 정문
② 본부 앞 잔디
③ 아크로
④ 자하연

‘자줏빛 노을이 내리는 연못’이라는 뜻을 지닌 관악의 명소 자하연(紫霞淵). 이 연못은 방문객들의 포토존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학우들이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꾸준히 자리해왔다. 잔잔히 흐르는 자하연의 물결을 따라 학생들의 추억과 발자취를 짚어보자.

자하연의 낭만은 언제부터였을까

자하연에 빠지면 헤엄쳐야만 나올 수 있을까? 제법 깊어보이는 자하연의 바닥은 사실 가장 깊은 곳이 1.4m를 채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면적은 어느 정도일까? 문화관(73동), 인문대(1, 2동), 자하연 식당(109동) 사이에 놓인 자하연은 가로 25m, 세로 40m로 총 1,000㎡(약 300평)에 이른다.

2003년까지 자하연에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었다(사진①). 오작교라 불린 이 다리에는 ‘연인이 이 다리를 함께 지나가면 1년 안에 헤어진다’는 유래를 알기 어려운 속설이 있었다(『한국일보』2003년 9월 7일자). 오작교는 97년 10월 ‘디자인 현상 공모’가 실시되면서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외관에서 벗어나게 됐다. 당선작은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리가 자연석으로 보이게 하는 디자인이었다. 이후 안전문제로 자하연에서 오작교가 철거되기까지 이 디자인은 자하연의 멋을 한층 더했다고 한다.

사진: 대학신문 사진부 DB(좌), 아르토이 제공(우)


자하연의 대대적인 변모는 2005년 ‘걷고 싶은 길’ 사업과 함께 이뤄졌다. 자하연 주변의 콘크리트가 걷히고 대신 나무계단과 데크가 조성됐다. 뿐만 아니라 벚꽃나무와 모란부터 부들, 가시연 등 수초까지 연못의 정취를 더하는 식물들이 여럿 자리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 꾸준히 제기됐던 악취와 녹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질개선장치도 등장했다. 시설관리국 고광석 주무관은 “많은 이들이 분수로 착각하곤 하는 연못 중앙의 장치는 사실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수질개선사업은 올 7월 25일 자하연에 새 식구가 들어오면서 가속화됐다. 상산학원 홍성대 이사장이 기증한 비단잉어 30마리가 자하연에 방생된 것이다. 관리과 김용옥 사무관은 “이 비단잉어가 자하연에서 원활하게 살 수 있도록 수질개선사업을 꾸준히 벌일 예정”이라며 “앞으로는 자하연의 맑은 물을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자하연에 꽃피는 학생들 이야기

자하연은 관악캠퍼스가 조성된 이래 학생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70~80년대 관악의 학우들은 입학 시기면 자하연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특히 오작교에서 자하연으로 뛰어내리는 ‘다이빙 신고식’은 관악인이 되기 위한 필수과정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관례는 1999년 봄축제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 동아리에서 회장을 물에 빠뜨렸고, 회장과 허우적대던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다른 학생 모두가 연못에서 익사했던 것이다. 당시 비가 내려 자하연의 수심이 2m가 넘었고 두 학생은 만취해 수영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 비극에 학생들은 대동제 일정을 축소하고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 사건은 관악 학우들에게 학내 안전문제와 관례로 행해지던 놀이문화를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대학신문』1999년 5월 24일자).

2000년대에 들어서 학생들은 물에 직접 들어가는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자하연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2003년 봄축제에는 오리보트가 자하연에 등장해 커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2006년 가을축제에는 연못에 괴물이 설치되기도 했다(사진②). 영화 「괴물」을 연상케 한 이 조각은 조소과 동아리 ‘아르토이’에서 가을축제를 기념해 만든 조각이었다. 자하연에 버려진 막걸리 수백통이 이 괴물조각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탄생설화가 붙으며 축제의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한편, 자하연을 둘러싼 데크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개최한 문화행사도 이어져오고 있다. 중고제품을 나눠쓰는 벼룩시장 ‘스누마켓’, 서양화과 판화 판매전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자하연 앞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관악의 학우들에게는 무던히 익숙한 공간인 자하연. 이참에 학우들과 함께 참신한 문화행사를 기획해 자하연 앞에서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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