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최진영 소설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위악적인 소녀의 모습을 그려낸 최진영 작가. 소설 분위기처럼 어둡고 까칠할 것만 같았던 그녀는 만나보니 ‘서글서글’한 사촌언니 같았다. 덕성여대 국문과를 졸업한 소설가 최진영은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을 통해 등단한 중고 신인 작가다. 하지만 등단 이후 4년 동안의 무명 기간을 거치며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장편은 써봐야겠다”고 다짐한 결과 2010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을 탄생시켰다. 첫 장편소설이 출간된 지 1년 만에 작가는 더 현실적인 리얼리즘에 주체적인 어머니상을 더한 두 번째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를 출간하며 주목받는 젊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출구’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다

작가는 김사과, 황정은 소설가 등과 함께 ‘포스트 IMF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그들이 바라본 포스트 IMF세대는 IMF가 절정이던 시기 대학을 졸업한 ‘저주받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사회가 가하는 폭력에 분노하며 사회의 강압적인 분위기 아래 강요되는 것들을 거부한다. 최진영 작가는 두 장편소설을 출간하며 암담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할 만큼 사실적으로 나타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주인공 소녀가 ‘진짜 엄마’를 찾아 나서며 겪는 소녀의 생존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녀는 부모로부터의 무자비한 폭력과 무관심에 지금의 부모를 ‘가짜 부모’라고 생각하며 ‘진짜’ 엄마를 찾아 나선 것이다. 소설가 박진은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소녀의 목표가 세상의 가짜를 다 모아서 태워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어제 내가 지나온 거리에도 돈 냄새를 풍기는, 제법 잘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는 건 나만큼 가난하고 배고프고 추운 사람들이다.(『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 엄마를 찾아 나서며 어두운 사회현실에 마주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최근작 『끝나지 않는 노래』는 100년 동안 3대(代)에 걸쳐 이어진 여인들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제 ‘논현동 방화사건’을 소재로 삼으며 죽음 앞의 현실을 처참히 묘사하고 있다. 불이 난 고시원에서 살기 위해 문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찔러 죽이는 괴한, 괴한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뛰어 내리기엔 높은 건물, 어떤 선택을 내리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이에 작가는 “현재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소설화했다”며 “승자 독식의 사회 시스템과 1등만이 인정받는 우리 사회에서 출구는 찾아볼 수 없거든요”라고 설명했다. ‘출구 없는’ 현실에 분노하며 작가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냉담해지는 우리들의 시선도 결국 ‘나눠 갖지 않으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작가는 말없는 폭력이 난무한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꼬집었다. 오늘날 사회는 과거에 비해 평균 소득도 높아지고 더 윤택해져 모두들 잘 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람들은 서로 서로에게 더 잔인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소녀의 시선으로 소설을 쓴 것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내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령 작가는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해 “아무도 근본적인 문제를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똑같은 그 곳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서로의 차이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차이는 곧 질투와 증오를 만들어냈다…(중략) 따돌림 당하는 한 명을 이해하기보다 무리에 흡수되는게 몸도 맘도 편했으니까.(『끝나지 않는 노래』)


진짜 ‘엄마’를 찾아

작가의 두 장편소설은 암담한 현실을 그리는 동시에 ‘엄마’를 등장시키며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했다. 첫 번째 소설에서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엄마를 찾았으며 최근작에서는 자식 앞에 희생하는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찾아가는 엄마를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력이 결국 자기 파괴적이라는 결과를 낳아 암담한 결말을 초래하지만 이는 결국 어두운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한다.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 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 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중략) 오직 중요한건 자신의 생존이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오늘날 드라마, 영화에서 그려지는 어머니상은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어머니였다. 몇 해 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엄마는 자식을 위해 사는 존재였다. 하지만 세상이 ‘희생하는 엄마’라는 콘텐츠에 집중하면서 작가는 ‘엄마’라는 주제를 통해 사회가 ‘기형적인 어머니상’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작가는 사회가 어려울수록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기형적인 모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사회에서 해줘야 할 일들을 모두 엄마에게 맡기며 모든 것을 엄마가 해야 할 일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희생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엄마의 모습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결과물이었다. 작가에 따르면 “사회의 잘못을 떠넘길 희생의 대상으로 ‘엄마’가 지목된 것뿐”이라고.

수다스럽고 욕심 많고 억척스럽고 무식한 엄마들에겐 ‘아줌마’라는 이름을 덧씌우고 무시하며 욕했다. 사회가 원하는 건 아줌마가 아닌 오직 헌신과 희생밖에 모르는 엄마였다…(중략) 아름다운 엄마란 나눠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엄마가 아니라 오직 내 자식에게만 모든 것을 먹이는 엄마였다.(『끝나지 않는 노래』)



환상의 달콤함을 거부한 이야기

시종일관 어두운 현실을 그려낸 소설을 읽으며 다소간의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했건만 작가의 두 장편소설은 여지없이 이런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두 장편소설의 주인공 모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희망적인 결말은 주인공의 것’이라는 정해진 공식을 깨기 위해서였다고 담담히 말한다. 작가는 꼭 주인공을 죽여야 하냐는 질문에 “주인공이라고 해서 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현실에서의 죽음은 너무나도 흔한데 소설에서 감히 희망을 주겠다고 소설 속 인물을 살리고 싶지 않았거든요”라고 답한다. ‘포장되고 가식적인 아름다움과 행복, 성장을 원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소녀’를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덧붙여 작가는 어린 소녀가 소설의 주인공이라 해서 자신의 작품을 ‘성장소설’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작가는 ‘성장소설’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작가는 “사회의 룰에 맞게 재단되는 것이 성장이라면 차라리 성장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힌다. 어른도 성장할 수 있고 성장하지 않는 어린 아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잊지 않은 작가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만 그 희망을 응시할 수 있다고 봤다. 작가는 또 한 번 도발적인 말을 던졌다. “소설에는 환상이 필요하지만 환상이 희망을 주진 않아요. 환상이 우리를 구원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아무리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서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한들 내 현실을 바꿔주지 않아요.” 작가는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환상으로 그려진 세상보다는 단순하나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전했다.

“수많은 질문을 모아 얼개를 짜면 그 안에 평범한 진실은 있기 마련이에요.”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질문들이 결국 진실과 현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본 작가. 그 진실 속에서 펼쳐질 세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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