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산도르 마라이, 『열정』

사랑은 어떻게 찾아올까? 어떤 이들은 사랑이란 황홀한 빛을 발산하는 것 같은, 처음 본 상대에게 마치 망치로 얻어맞은 것과 같이 한 눈에 반하고 속절없이 이끌리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전류에 감전되듯 짜릿하고 황홀한 순간에 매료되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마치 영화에서처럼 어느 날 멋진 남자 혹은 아름다운 여자가 다가오면서 내게 말을 걸고 거짓말 같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숱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이처럼 극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 영화 「세렌디피티」에서도 마찬가지다. 분주하고 들뜬 뉴욕의 크리스마스 이브. 남녀 주인공은 백화점에서 각자의 연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다가 마지막 남은 장갑을 동시에 잡게 되면서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는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서로에게 끌리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도 여행을 떠나가거나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면서 영화에서처럼 멋진 사랑이 시작되기를 고대하면서 설레곤 한다. 그러나 이처럼 극적이고 멋진 운명적인 사랑은 일상에서보다는 영화에서 더 자주 일어날 뿐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인생에서도 운명적인 사랑은 그리 흔하게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은 격렬한 불꽃을 튀기면서 극적으로 시작되기 보다는 수채물감이 천천히 물에 퍼지듯 처음에는 우정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저 좋은 친구에서 시작해서, 언제인가부터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이다. 이럴 때 우리는 우정인가, 사랑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사람과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인지 아니면 사랑인 것인지를 스스로 자문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한 가지 팁을 제시하고 있다. 일명 부재 검사(absence test)이다. 이 사람이 곁에 없을 때(부재 시)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오래 떨어져 있어도 견딜만하고 그 상실감이 덜하다면 그건 우정이다. 만약 미칠 듯이 보고 싶고 갑자기 일상생활이 무의미해지면서 그 빈자리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게 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사랑이다. 우정보다 사랑의 감정은 더욱 격렬하며 더욱 상대를 그립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정과 사랑의 구분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하다. 그런가 하면 세 사람 사이에서 우정과 사랑 사이를 선택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유행가 가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눈 오는 날이던가 벤치에 홀로 앉아 그녀를 기다리다가 친구의 친굴 만났네. 친구의 친구이기에 사랑할 순 없었네. 널 갖고 싶다고 말을 해볼까. 차라리 눈 감고 뒤돌아서서 고백해 볼까.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친구와의 우정을 지속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우정을 배신하고 사랑을 택해야 할 것인가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고민이다.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 『열정』 역시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한 고통을 아주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둘도 없이 가까웠던 친구 콘라드의 배신과 진실에 대한 답을 44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스스로 찾아 가는 75세의 퇴역 장군 헨릭의 독백 같은 소설이다. 그 독백 속에서 우리는 한 남자가 사랑과 우정에서 느낀 기쁨과 고통이 세월을 거치면서 절제돼가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친구의 사랑, 이 세 사람 스스로 절제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배신에 대한 감정이 일생에 걸쳐 제 갈 길을 찾아간다. 그 어떤 장황한 대화 한 번 오가는 법이 없이 한 여자에 대한 두 남자의 사랑, 우정에 대한 배신은 그때까지 쌓아올린 우정의 깊이만큼 오랜 기간을 걸쳐 서서히 잦아든다.

주인공 헨릭이 느꼈던 분노와 배신감은 44년전 당시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해서 헨릭은 고독하게 칩거함으로써 그 감정으로부터 회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격렬한 감정은 시간 속에서 천천히 침잠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답이 찾아온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말한다.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고통 받으면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라고. 결코 그것을 회피하려 말라고…. 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가벼운 내 감정의 싸움이었는지는 세월이 지난 다음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지금 해답을 얻으려 한다고 해서 답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답은 지금이 아니라 훗날에 있다. 과거를 돌이켜 궁금했던 감정의 결과를 깨닫기 위해서 지금 할 일은 내게 찾아오는 사랑을 회피하지 않고 오롯이 열정으로 뛰어드는 일 뿐이다.

사랑! 이는 분명 우정과는 다른 색깔이다. 그러나 그 정도와 깊이에 있어서 우정과 사랑 중 무엇이 더 우선하며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관계 그 자체이다. 얼마나 충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 이것이 바로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가 일 것이다. “우정은 병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성별이 같은 사람에게서 찾는 만족과는 다르네. 우정의 에로스에는 육체가 필요 없어. 육체는 흥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지. 하지만 에로스는 에로스일세. 모든 사랑, 모든 인간관계에는 에로스가 숨 쉬고 있어”라는 헨릭의 말처럼 말이다. 물론 그러한 관계 안에 사랑이 있다면 그 무엇보다 값질 것이다.

이 책에서 헨릭은 또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는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자네도 생각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산 것이 아니겠지?” 그런 정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 사랑은 결코 당시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생 전반에 걸친 메시지를 던져 줄 것이다. 결코 이루어지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그 삶은 헛된 것이 결코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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