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에는 ‘달나라로 간 별주부전’이라는 코너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는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은 이 코미디언을 아버지로 둔 딸과 그녀를 사랑하는 주인공인 ‘나’가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보다는 코미디언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두고두고 뇌리에 남았다. 그는 “콩나물 다 무쳤냐”라며 ‘수지Q’에 맞춰 엉덩이춤을 추던 이주일에 밀리다가,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이주일, 배삼룡 등이 ‘저질 연예인’으로 낙인찍히며 방송 금지를 당하자 그제야 빛을 보게 된다.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달에 간 별주부 역을 맡아 계수나무에 부딪치고 당근에 미끄러지는 등 바보 연기를 선보이던 그는, 전두환 대통령을 향해 “성군(聖君) 나셨도다아!”를 외치며 텔레비전 출연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남긴 유일한 유행어가 “웃을 일이 아니에요”였는데,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코미디언이 정색하고 “웃을 일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자체는 우스울지 몰라도,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군인을 향해 ‘성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웃을 일이 아니었다. 웃을 일이 아니라며 농담처럼 던진 그의 말이 오히려 진담처럼 들렸다고나 할까.

한편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는 무심히 던진 농담 한마디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한창 ‘작업’을 걸던 여학생으로부터 별 반응이 없자 심술이 난 나머지 스탈린주의가 한창이던 당시에 “트로츠키 만세”를 엽서에 써서 보내는데, 결국 그게 빌미가 돼 대학에서 추방되고 수용소와 강제노역장으로 보내진다. 그는 이후 자신을 탄핵한 동료에 대한 복수로 동료의 처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둘은 이미 오랫동안 별거 중이었고 당시 추앙받던 이데올로기 역시 잊힌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시한 농담 한 마디에 그의 삶 자체가 쓰디쓴 농담이 돼 버린 것이다.

쿤데라는 한 인터뷰에서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는 죽음의 세계라고 말한 바 있다. 신성불가침한 확신 위에 건설된 사회에서는 이해보다는 심판이 앞서기 때문에 지혜와 관용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어리석음이란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갖는 데서 오는 것이기에 세상을 하나의 질문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점에서 전체주의 사회는 질문들의 세계가 아닌 대답들의 세계, 그리하여 농담이 설 자리가 없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요즘 들어 점점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노크 귀순’이 문제가 되자 전방 철책 지역에 전화기를 설치하겠다는 군의 대책 발표는 과연 농담일까, 진담일까.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의 형은 ‘현금 거래를 좋아해서’ 무려 6억 원의 현금을 대통령의 아들에게 ‘빌려’줬다는데 이건 설마 농담이겠지? 북한과 관련된 재미없는 농담 좀 했기로서니 한 트위터리안에게 2년형을 구형한 검찰이 부디 농담과 진담을 확실히 구분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건 진담으로 하는 말이다.

안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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