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본격적인 도시계획이 수립된 지 50여년이 지나 과거 유용했던 건축물들이 지금은 낡고 낙후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이에 재건축 사업이 도입됐으나 발생한 환경 오염, 개별적 특성이 누락된 전면 철거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 등 여러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도시 공간을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폐공장처럼 버려지고 사용하지 않는 유휴공간들을 그 공간의 특색과 문화를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공간 재활용'의 개념이 대두한 것이다.『대학신문』은 서울시 내에 있는 대표적인 재활용 공간들을 살펴봤다.


신발공장에 스며든 커피향



마포구 합정동 홍대 부근에 위치한 '당인리 커피공장'은 옛 신발 공장을 변형해 카페가 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계산대 옆에 위치한 기다란 컨베이어 벨트가 눈에 뜬다. 점원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커피를 만들고, 손님들은 그곳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카페의 벽은 특별한 벽지 없이 시멘트로 돼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파란색 폐문이 눕혀져 테이블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물건은 원래 신발공장에서 쓰던 것이거나 다른 폐공장에서 주워온 것으로, 자원 낭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가 독특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창출한다. 게다가 특이한 컨셉 때문에 먼 지역에서도 커피를 마시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수력발전소를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꿨던 영국의 와핑프로젝트(Wapping project)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카페 주인 박성희씨는 "카페는 비용이 많이 들어 부유한 사람들이 차린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며 "폐자재를 이용하는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손님들이 새로운 정서를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카페 설립의 취지를 밝혔다.


수도관에 피어난 초록빛



공원 곳곳엔 녹슨 파이프들이 꽂혀있고 사용연도가 적혀있는 안내판이 그 앞에 놓여있다. 지나가던 아이들은 발길을 멈추고 안내판을 보며, "와, 아빠보다 나이 많네"라는 말을 한마디씩 하고 간다. 이곳은 영등포구 양화동에 위치한 선유도공원이다. 이미 서울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선유도공원은 부지 면적만 총 11만 400m^2이며, 1978년부터 서울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한강 정수장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강북정수장이 증설됨에 따라 2000년에 폐쇄됐고 이 자리에 옛 정수 시설들을 보존한 채로 환경을 살린 공원이 조성돼 2002년에 공식 개장했다.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인 선유도공원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 과거의 시설들이 환경과 어우려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사이로 식물들이 자라고, 파이프를 이용해 만든 미끄럼틀과 과거 물이 흘렀을 법한 곳에 오리가 앉아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한 휴식 공간뿐만 아니라 수생식물원과 옛 송수펌프실 건물을 보수해 만든 한강역사관 등도 공원 내에 위치해 있어 다양한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


공장에서 펼치는 예술가의 꿈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예술공장은 과거 인쇄공장을 개수한 곳이다. 이곳은 비어있는 유휴공간들을 창작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는 서울시의 도심재생프로젝트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예술가들은 여기에 거주하며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한다. 또한 이들은 예술공장에서 추진하는 지역 간의 매칭사업을 통해 전시를 진행하고, 주변 학교와 연계해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서 미술창작 교육을 받았던 한 주부는 현재 전업작가가 돼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있다. 자유로운 기숙사 같은 분위기의 예술공장에는 스튜디오와 전시실, 세미나실 심지어는 공동 부엌과 호스텔도 갖춰져 있다. 현재 이곳에 입주해있는 박이브씨(30)는 "공장 밀집 지역인 금천구에서 예술공장은 주민들의 문화 향유를 담당하는 곳으로 잘 융화돼있다"며 예술공장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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