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중권

그는 이미 유력한 정치인이나 마찬가지다. 주요 이슈마다 따라붙는 정치적 발언들은 물론이고 지인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사담을 다루는 기사까지 일간지에서 그의 이름을 찾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트위터 계정(@unheim) 팔로워가 27만8천명을 상회할 정도니 이만하면 웬만한 지역구 국회의원보다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현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직을 맡고 있지만 단지 그가 맡은 직업만으로는 그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모두 설명하기 힘든 사람, 바로 진중권의 이야기다.

인터뷰: 노상균 편집장 tkdrbs59@snu.kr       글: 정혜경 부편집장 noma1221@snu.kr
사진: 김은정 사진부장 jung92814@snu.kr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삽화: 강동석 tbag@snu.kr



진중권은 쉴 새 없이 바빴다. 한양대에서 열린 특강이 끝나고 2000년대 초중반 출간과 함께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미학 오디세이』를 비롯해 최근 출간한 『생각의 지도』 등 그의 저서들을 들고 줄 서 있는 학생들 뒤에서 그를 기다렸다. 오전에는 팟캐스트 녹음도 있었다. 특강 이후 그날 시청에서 열린 다른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에 잠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잠시 담배 좀 피우고 시작하죠”라며 담배를 꺼내 들고 다른 강의 일정을 논의하는 통화를 끝낸 그는 유명세를 치르는 저명인사답지 않게 북적이는 카페의 빈자리를 아무데나 골라잡아 앉았다.

◇파이터는 ‘놀이’를 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촌철살인과 같은 그의 발언들만이 기삿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북방한계선(NLL)과 정수장학회를 둘러싸고 한 네티즌과 생방송으로 진행했던 토론은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토론 이후의 공방까지 토론 사실 그 자체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제공하며 많은 이목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논객 진중권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동명의 이소룡 영화에 빗대어 한 보수 논객이 제안해 이뤄지는 보수 논객 다수와의 이른바 ‘사망유희’ 토론도 네티즌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다.

서울대 미학과 82학번으로 대학원에서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마친 뒤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수학하며 다작의 학문적 저술을 내놓은 학자가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이러한 이벤트들은 말 그대로 ‘유희’가 아닐 수 없다. 각종 토론장에서 맹렬한 투사로 분해 날카로운 논변으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은 콜로세움 안의 검투사를 보는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그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은 진중권 특유의 풍자적 어법이다. 그는 순발력 있는 언어유희의 대가이기도 하다. 웃음으로 버무려진 치열한 논변을 펼치는 ‘놀이하는 검투사’라는 독특한 그의 초상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고매한 단상을 탈피해 가볍고 발랄한 탈권위적 평지 문화의 지배를 받는 오늘날 대중의 구미에도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진중권도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있을까. 그는 2009년 한 인터뷰에서 “토론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합리적 토론의 이상을 기대하고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쇼맨십을 보이는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며 “논변의 합당함을 면밀하게 따져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방송을 통해 내 편이 이겼다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쇼”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러한 ‘쇼’로서의 토론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합리적인 토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토론 프로그램 속의 정치적 양식들을 깰 필요가 있다고는 봐요”라며 “토론 프로그램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를 활용한 정치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론은 항상 합리적인 토론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에요. 민주사회에서의 투표권 확대같이 명백하게 공익에 부합하는 것들이 토론 거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토론이 이미 무엇인가를 관철하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는 정치 활동임을 말하는 거죠”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진중권은 토론이나 논쟁을 “무림 고수들의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각종 무협 활동들로 이해하는 것은 넌센스”라며 “논쟁에서의 승리는 무림 고수들의 무공처럼 무슨 말싸움의 스킬이나 특정한 비법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 편’인지를 선택하는 최초의 판단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개인이 추구하는 사익들 중 가장 공익에 부합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직관하는 과정에서 이미 논쟁의 승패는 결정된다는 것이다.

◇버릴 수 없는 그 이름, 대중

‘합리성’이 제1의 무기라고 말하는 진중권이 논객으로 활동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그간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 무수한 논객들 중에서도 진중권의 유명세와 논객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은 눈에 띌 만큼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진영 이분법을 떠나 진중권이 위치한 참신한 좌표가 주효했다. 그 좌표는 바로 가능성과 위험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대중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다.



1998년 「조선일보」의 독자마당 게시판에서 하룻밤사이 5개의 논평을 쏟아내는 등 많은 네티즌들을 상대로 ‘밤의 혈전’을 벌이며 논객으로 이름을 전국에 알리게 된 진중권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부상했지만, 곧 엘리아스 카네티가 말한 ‘파시스트적 군중’으로의 위험성을 배태한 대중을 양산할 수 있는 좌우파 진영 어디에나 총구를 겨누는 저격수로 그 정체성을 매김했다. 2006년 황우석 사태를 거쳐 디워 논쟁, 최근에 와서는 나꼼수의 정치적 팬덤에 일침을 놓으며 그는 지금도 여전히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공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그의 일관적인 원칙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고 이는 논객으로서 그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 진중권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대다수의 중론이다.

2007년 『대학신문』에서 주최한 한국의 근대성과 대중에 대해 논의하는 좌담회(2007년 11월 5일자)에서 한국 대중의 속성을 “근대적인 군사문화와 전근대적 신화의식으로 무장하고 탈근대적인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라 밝힌 진중권은 그 때와 비교해서 그의 대중론에 차이가 생겼냐는 질문에 그는 별반 다르지 않다며 “대중의 변덕스러움 자체에 어떤 종류의 개선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쟁점마다 투쟁이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답하면서도 “군중으로의 위험성과 자율주의적 다중으로의 가능성이라는 양면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다만 과거에 비해 전근대적인 면모를 벗어나며 조금씩의 진전은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황우석 사태 논쟁 당시 황우석 지지자들에 의해 3시간동안 억류된 기억이 있다. 당시 그는 “신변의 위협을 크게 느낀다”고 할 정도로 대중에 의한 공포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에게 맹목적이고 위험했던 황우석 사태와 디워 논쟁에서의 대중들은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켠 바로 그 대중이기도 했다. 진중권은 2008년 여름 촛불 시위 당시 매일 광장에 나가 스스로 시위 현장을 누비며 다중으로서 대중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 어쩌면 변덕스러운 대중에 대한 일종의 회의론을 견지하면서도 끊임없이 트위터 등을 통해 결코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진중권은 역시 대중에 대한 강한 믿음과 기대를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기실 진중권의 유명세 또한 대중에 빚진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인터넷 시대 개막과 같은 당시의 분위기와 함께 내 성격이 대중들의 흥미에 부합했던 것이 가장 큰 운으로 작용한 것 같다”며 자신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배경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의 심리와 습속, 그리고 그 연원에 대한 저서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출간하고 꾸준하게 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대중에 대비되는 ‘지식인 엘리트 계급’의 계몽적 역할을 강조하는 엘리트주의자일까. 그가 정의하는 엘리트 계급은 이미지가 위주가 되지만 단지 그것을 ‘볼’ 뿐 ‘읽지’ 못하는 텍스트 문맹의 시대에 기존 세계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신만의 텍스트 독법을 마련할 수 있는 이들일 지 모른다. “대중은 이미지를 더 진실한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지식인의 역할이 생긴다. 이미지 아래에 숨어있는 의미, 의도, 프로그램 등을 읽어내 대중에게 알려줘야 한다.”(『대학신문』 2007년 11월 5일자)

그러면서도 그는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분야에서 고정된 지식인은 존재하지 않고 또 숭고한 사명감으로 대중을 계몽하려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한다. 더 이상 지식인에게 대중 계몽의 의무는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대중이 파시스트적 군중으로 향할 수 있는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집단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대중들이 향후 자신의 신체와 행동양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계기를 심어주는 ‘존재 미학적 제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른바 엘리트 계급이 학벌이라는 고정적인 양식으로 과잉 생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서울대 관련 주요 대선 공약인 민주통합당의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변을 마련할 수준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는 동의한다”며 “스카이로 상징되는 엘리트가 1년에 1만5천명이나 쏟아져 나올 필요가 있나? 차라리 200~500명가량의 소수 정예 엘리트 스쿨을 따로 만들고 나머지는 평준화하는 것이 사회 통합을 위해 낫다고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롤 모델은 없다

정제된 언어 속에 있었던 논객의 무대를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인터넷 공간으로 끌어와 끈질기게 자신의 논지를 밀고 나가는 논객-파이터라는 선구적인 캐릭터를 선보인 진중권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윤형 등의 2030 청년 논객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진중권도 패기어린 젊은 논객들의 ‘멘토’가 될 수 있을까?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누굴 키우겠다는 생각도 없고 누굴 키워본 적도 없어요”라 대답했다. “일회적인 삶에서 롤 모델이며 멘토가 말이 됩니까. 삶의 양식들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요. 각자 잘 사는 거지. 롤 모델을 찾는다는 건 곧 자기 인생을 전형적인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박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왜 누군가의 인생을 대변합니까. 내가 예수야, 석가야?”

다만 그는 “요즘의 젊은 논객들에게 다소 아쉬운 점은 너무 ‘잘다’는 점이에요”라 덧붙였다. “과도하게 디테일의 정확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논객은 큰 판단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크게 나가는 대신 세세한 디테일을 희생해야 할 때가 많은데 요즘 젊은 논객들은 오해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대마를 놓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큰 논지와 상관없이 불필요한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곡해, 왜곡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런 부분들이 모두 해소된다는 믿음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작 논쟁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메시지가 훼손되지 않는다. 그는 “의도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화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대중이 개입할 여지를 주는 게 좋죠”라 말한다. 지난해 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람들의 약을 올린다. 생각하고 엉기게 만든다. 건방진 느낌으로, 살짝 재수 없게 건드린다. 그래서 덤비면 슬슬 상대해준다. 논쟁의 인문학적 임무는 진보건 보수건 공부를 하게,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라 했던 발언과 비슷한 맥락이다.

인터뷰 내내 막힘없이 여유롭게 대답했던 진중권의 표정에는 노회한 정치인의 얼굴에 배어있는 인정(仁情)과 냉정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는 미소가 항상 서려있었다. “이번 대선은 온전히 어떤 후보들도 자기 힘으로 선출되지 못하는, 또 자기 이니셔티브를 장착하지 못하고 있는 퍽 재미없는 대선이죠”라는 그는 “그래서 제가 토론이며 뭐며 여러 이벤트를 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번 대선 이후 논객 생활을 은퇴하고 전공 분야인 예술과 문화 영역에서 저술 활동을 비롯해 본인의 학문적 야심을 이루는 데 몰두하고 싶다고 밝혔다. 독설가, 미학자, 평론가, 광대. 그의 적확한 정체성이 무엇이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슈메이커’이자 ‘트러블메이커’로 회자될 것으로 보이는 진중권은 이 시대의 독특한 화제(話題)인 것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