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지난달 10일(수)과 27일, 서울발레시어터의 현대발레 「꼬뮤니께」(2012)가 강동아트센터와 과천시민회관 무대에 올랐다. 「꼬뮤니께」 공연 시작 전 검은 옷, 맨발 차림의 한 남성이 무대 한 귀퉁이에서 가만히 108배를 올린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씨다. “발레를 통해 객석과 소통하고자 공연 시작 전마다 108배를 올린 지가 벌써 2년째”라는 제임스 전. 그는 “타인과 소통하기 전, 먼저 내 자신을 낮추고 싶다”며 “108배를 하다보면 어느샌가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현대발레 「꼬뮤니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전씨를 한국체대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발레계의 이단아가 되기까지

제임스 전씨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역임했다. 한국의 대표 발레리노로 일컬어졌던 그이지만 사실 그는 대학 입학 전까지 발레를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연극에 관심이 있어 ‘희곡’이나 ‘연극사’ 등 연극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다”는 전씨는 “연극을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무용도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용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무용 수업 중에서 발레가 가장 쉬워 보여 도전했지만, 막상 배워보니 어려웠다”고 웃음지었다.
 
뒤늦게 시작한 발레였지만 그는 점차 발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결국 그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무용수였던 교수의 추천으로 회계학 공부를 접고 줄리아드 예술대학에 입학해 발레리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스물이 다 돼 굳은 몸으로 발레를 시작하려니 고생이었다”고 반추하며 “신체조건이 맞아야 할 수 있다는 발레리노를 평발인 내가 전업으로 하게 됐다니 아이러니하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1994년 제임스 전씨는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때 그는 모리스베자르발레단, 플로리다 발레단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 우리나라의 최고의 수석무용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전씨는 당시를 “틀에 박힌 발레에서 벗어나 표현주의적 춤을 추고 싶어 유럽으로 건너갈 준비를 하던 차”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옛 동료들이 그를 만류하며 함께 새로운 발레단을 창단하자는 이야기를 꺼내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이때 탄생한 발레단이 바로 전씨가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서울발레시어터다.
 
망설여졌을 법한 큰 선택 앞에서 그는 물러서기보다 새로운 길에 도전하기를 택했다. “현재 쥐고 있는 것을 어느 정도 놓아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는 제임스 전씨. 그는 자신이 늦깎이 발레리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새 발레단을 창단하고 그곳의 상임안무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매순간 다가오는 선택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발레로 감싼 세상의 낮은 곳들

제임스 전씨가 1995년에 창단한 서울발레시어터는 발레의 역수출과 창작, 대중화를 기조로 한다. 창단 당시부터 그는 발레단이 사회에 공헌하는 단체가 되도록 노력하려 했다. 하지만 창단초기의 발레단은 외환위기로 인해 경영이 힘들어 존폐위기를 겪기도 하고, 국립발레단에 밀려 예술의전당에 상주할 수 없게 되면서 연습할 곳을 잃기도 했다. 전씨는 이때를 “사회공헌이라는 애초의 목적은 미뤄두고 발레단이 기틀을 잡도록 전념했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제임스 전씨가 재능기부를 체계적으로 시작한 것은 2년 정도가 됐다. 서울발레시어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여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단원들과 함께 다문화가정의 자녀, 미혼모, 저소득층 아이들 등 소외계층을 직접 찾아다니며 발레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소외계층에게 발레교육을 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노숙인 자활잡지 「빅이슈」와 인연을 맺고 노숙인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것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그는 “노숙인에게 발레를 가르친 것은 그들이 자세를 교정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발레수업이 시작된 지 2년이 돼가는 지금, 전씨는 “토슈즈를 신은 노숙인들의 얼굴에서 행복함과 자신감이 만개하는 것을 본다”고 했다. 노숙인 발레리노들이 당당히 어깨를 펴고, 턱을 든 채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면 한없이 뿌듯하다고.

사진: 주현희 기자 juhieni@snu.kr

 
재능기부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노숙인 발레리노와 주기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인생에 대한 전씨의 의욕도 높아졌다고 한다. 춤을 추면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단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과 영감을 담아 현대인들의 내외적인 고뇌를 그린 현대발레 「솔로이스트」(2011)와 그 고뇌를 딛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그려낸 「꼬뮤니께」를 제작했다. 전씨는 “「꼬뮤니께」는 지난 2년간 서울발레시어터의 무용수들과 홈리스 발레리노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며 정이 드는 과정에서 느낀 바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제임스 전씨의 사회공헌적 발레교육은 어느새 남미까지 흘러가게 됐다. 지난 9월 제임스 전씨와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이 콜롬비아 외무부의 「PIP+20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마약, 폭력에 노출된 콜롬비아 청소년들에게 발레 동작을 가르치고 온 것이다. 그는 “단원들이 콜롬비아 청소년들에게 교육봉사를 하며 춤까지 출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며 “앞으로도 단원들과 함께 이런 활동들에 나서 발레리노, 발레리나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웃음지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삶의 안무를 구상하길

“콜롬비아 사회봉사를 나섰을 때 느낀 자부심을 서울발레시어터 후배들이 꾸준히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제임스 전씨. 그는 “우리나라 발레단 중 서울발레시어터처럼 소외계층에 발레교육을 하면서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발레단이 몇 없다”며 “이처럼 서울발레시어터가 창작발레를 무대에 올리고 사회에 재능을 기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마운 후배들이 함께해준 덕”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그는 꾸준히 후배들과 재능기부 형식의 사회봉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 했다.

제임스 전씨는 한국 발레계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발레계가 대중에게 한 발 더 다가섰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가 정서적으로 건강해진다”며 “그러기 위해 발레계가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을 위해 문턱을 한층 낮추고 직접 다가설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임스 전씨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몰개성적인 면모가 보이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돈과 외모 등 획일적 가치에 연연하기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진솔히 고민해 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신은 회계사가 돼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젊은 날 발레를 마주하며 삶을 역동적으로 바꿔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랬듯 “확립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신껏 스스로의 삶과 발레를 가꾸고 이제는 사회까지 가꿔가는 제임스 전 상임안무가. 앞으로 그가 어떤 동작으로 삶의 안무를 구상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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