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도입 논란, 쟁점을 짚다
영리병원 도입 논란, 쟁점을 짚다
  • 김민식 기자
  • 승인 2012.11.11 0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자유구역 영리병원 허용
외국 자본 50%, 외국인 의사 10% 등 일정 조건 갖추면 영리병원 설립 가능
영리병원 도입으로 경쟁 심화되면 건강보험 무력화 등 공공성 파괴 우려

A씨는 작업 중 사고로 중지와 약지가 잘려나갔다. 중지접합에는 6만달러, 약지접합에는 1만2천달러가 든다. 비싼 보험료 때문에 보험을 들지 못했던 A씨는 돈이 부족해 중지를 포기하고 약지 수술만 받는다.

지난 2008년 개봉해 미국식 의료민영화의 현실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 영화 ‘식코(Sicko)’의 한 장면이다. 국내에서 한동안 잠잠하던 의료민영화 논의가 영리병원 도입과 관련된 사안이 부상하면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9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공포했기 때문이다. 시행규칙이 공포됨에 따라 기존에 국내에서 병원설립이 불가능했던 외국면허의사, 외국의료법인 등도 허가절차만 거치면 송도, 부산, 광양 등 전국 6개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외국 영리병원을 허용한 경제자유구역법이 제정된 지 10년 만에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법·제도적 장치가 모두 마련된 것이다. 정부와 기업 등 영리병원 설립 찬성측은 영리병원 설립이 외국자본유치, 의료서비스 향상 등의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시행규칙 제정을 반기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이 공공성이 취약한 국내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리고 의료서비스의 양극화를불러올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영리병원 도입의 추진배경을 되짚어보고 주요 쟁점에 대해 짚어봤다.

영리병원 도입, 계속돼 온 논란

현행 의료법은 개인병원과 비영리병원만을 세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영리병원은 수익금 전부를 시설보수, 근로자 임금지급, 의료기 구입 등을 통해 병원에 재투자하도록 규정돼있다. 국민의 질병 치료가 상업적 목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일반 법인도 요건만 충족하면 별다른 제한 없이 설립할 수 있고 병원운영을 통한 수익금의 사용 또한 자유롭다. 특히 영리병원은 일반 법인처럼 주식과 채권발행을 통해 투자받은 자본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수익금을 배당할 수 있다.

영리병원 도입에 관한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리병원 문제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의료민영화의 일환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서비스의 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자 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민간자본유치를 통해 △고급의료서비스 제공 △고용창출 △해외환자의 유치를 통한 의료관광 활성화 등을 목표로 경제자유구역에 외국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추진했으나 극심한 반발로 중단된 바 있다.

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한동안 잠잠했던 영리병원 도입 논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속도로 진행됐다. 송도에 영리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시도했던 미국 뉴욕장로병원, 존스홉킨스병원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보건복지부는 병원 설립에 관한 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투자가 무산됐다고 판단한 것이다.이에 정부는 지난 4월 외국의료기관 설립에 관한 세부시행규칙을 입법예고했으며 이 규칙이 지난달 29일 공포된 것이다.

이번에 공포된 규칙은 영리병원의 세부적인 개설허가절차와 함께 △최소 10%의 외국인 의사 배치 △외국자본비율 50% 이상 유지 △의사결정기구의 50% 이상을 외국인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시행규칙 공포에 대해 인하대 경제학부 정인교 교수는 “영리병원 문제가 일단락돼 경제자유구역이 서비스 산업 특수지역으로 발전할 제도적 장치를 갖췄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한 편법을 통해 영리병원 설립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시행규칙 개정으로 외국인을 위한 병원 설립이 가시화됐다는 정부의 발표에 대해 김경자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국인 의사로 90%를 채우고 의사결정기구에 한국인이 절반까지 참여할 수 있는 사실상의 국내 영리병원 설립이 허가된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제주도, 경제자유구역을 포함한 7개 구역 18개 도시 등 전국에 내국인을 위한 영리병원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래픽: 최지수 기자 orgol222@snu.kr


의료서비스, 공공성인가 시장성인가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공공성과 시장성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정부와 대한병원협회 등으로 대표되는 찬성측은 의료 또한 하나의 상품이므로 시장질서에 맡겨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국민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임을 강조하며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한다.

찬성측은 영리병원 도입의 가장 큰 이점으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을 들고 있다. 민간자본유치를 통해 의료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지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또 영리병원 간 수익창출경쟁이 치열해지면 환자의 선택권도 넓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료관련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의료서비스가 향상됐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한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미국의 경우 영리병원 환자의 욕창발생률, 사망률 등이 모두 비영리병원보다 높고 진료대기시간, 수술예약 대기시간도 영리병원이 더 길다”며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찬성측의 의견을 일축했다.

또 찬성측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료서비스 확충을 통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의료서비스 산업의 고용창출 효과는 제조업의 6배 이상”이라며 “대형병원 1개가 생기면 3,500명에서 7,800명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손 의원은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전국적으로 21만 명의 고용창출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영리병원의 고용 창출 효과가 상당함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반대측은 한국의 병원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병원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미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일반병상 수는 6.6개로 OECD 평균인 3.6개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병원이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인력의 재배치 역할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설립 반대 측은 영리병원이 의료비 인상을 불러오고 국민건강보험제도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리병원이 고급화된 의료상품을 개발하면 전 의료계의 과잉 진료 경쟁으로 이어져 의료비 폭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또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명무실해고 민간보험이 활성화돼 건강보험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강준 사무관은 “의료비의 60~70%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 의료비를 내며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반대측의 주장에 일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건강보험은 의무가입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운용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제주대 의료관리학과 이상이 교수는 “지금도 환자들은 명망 있는 의사를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황”이라며 “삼성서울병원의 최고 권위자를 영리병원으로 초빙한다면 환자들이 찾아가지 않겠냐”고 복지부의 의견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이 교수는 “영리병원이 특정 민간보험 가입자만 받게 된다면 민간보험확대로 인해 국민건강보험이 붕괴될 것은 뻔한 일”이라며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이번 시행규칙 공포를 시작으로 영리병원 투자자를 모집해 2015년까지 송도에 첫 영리병원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편법으로 처리된 시행규칙을 폐기하고 국회에서 적절한 논의를 거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영리병원 도입에 관한 논쟁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