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에서 대학원생 인권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인권센터 실태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반향을 일으켰고, 스누라이프에서는 인권센터에 찾아가기로 했다는 한 대학원생의 글에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를 대하듯 격려가 쏟아졌다. 『대학신문』 역시 그동안 대학원의 열악한 실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인권센터의 조사가 있기 전인 지난 4월 이미 전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유사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지난달에는 대학원생과 교수들을 초청해 좌담회를 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대학원생들은 모두 힘겹게 목소리를 내 주었다. 전체 정원의 10%에 달하는 대학원생들이 설문에 응답했고, 자유기술 항목에는 혹시나 모를 불이익을 걱정하면서도 대학원의 현실을 한탄하고 고발하는 글이 빼곡했다. 좌담회에 참석할 대학원생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여름방학부터 수소문한 끝에 소속과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겨우 몇 명의 대학원생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는 ‘일부의 사례일 뿐’이라는 한마디에 다시 잦아들고 있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학교의 분위기를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충격적인 결과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대신 자극적인 언론 보도에 대한 지탄과 교수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항의만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이야기가 잦아든 지금,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 차원의 대책은 찾아볼 수 없고, 대학원생들 앞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꿈쩍할 줄 모르는 돌벽처럼 버티고 서 있다.

궁금해진다. 18.0%가 교수의 개인적인 업무 처리에 시달리고 18.9%가 폭언 및 욕설을 들었다는데 10~20%의 학생들은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겪어도 관계없는 것일까? 아니면 『대학신문』 설문 결과가 ‘표본 선택 과정이 없어 믿기 어렵다’고 했던 한 보직교수님의 말대로 설문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학신문』과 인권센터의 조사가 매우 유사한 결과를 얻었는데도 믿을 수 없다면 이제 누가 조사를 해야 할까?
오히려 불똥은 이번 조사를 수행하고 발표한 인권센터에 튀고 있다. 인권센터에는 ‘내 이야기도 나왔느냐’고 묻는 교수의 전화뿐 아니라 ‘무슨 의도로 언론에 결과를 공개했느냐’는 식의 눈총과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부총장마저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권센터의 발표가 ‘업무상 미숙’이었다고 사과하는 가운데 인권센터는 실태조사 이후로 계획했던 업무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든 교수가 대학원생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도, 대학원생의 ‘적대시할 대상’인 것도 아니다. 취재하며 만난 대학원생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시달리다 지쳐 자퇴를 고려하던, ‘일부 중에서도 일부 사례에 속하는’ 대학원생조차도 잘못된 관행과 문화, 그리고 이를 개선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와 인식 개선을 대학원생 스스로 해내기는 어렵다. 대학원생 대표단과 교수 대표단이 함께 인권조례를 마련하고, 인권센터가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대학원생 자치회 설립을 추진하고, 만들어진 자치회와 본부 간의 대화채널을 만들자는 등의 의견이 모여도 학교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행되기 어렵다. 학생으로서도, 노동자로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사회적 지위를 공론화하고 개선하자는 주장도 지금과 같은 침묵 속에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교수는 대학원생에 대해 사실상 절대적인 것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대화를 시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아직 학교에 학생을 위하고 존중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믿는다. 그러니 ‘일부’가 아닌 그 교수님들께 기대할 수밖에 없다. 참다못한 고발과 묵살의 반복은 이제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대학원생을 대신해 교수님들께 부탁드린다. 부디 이제 움직여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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