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이제훈 역)과 서연(수지 역)은 골목 귀퉁이 버려진 한옥집에서 둘만의 기억을 쌓아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옥에는 아파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포근함과 낭만이 녹아있다. 최근 이러한 한옥의 매력을 보존하면서도 기술적 보완을 통해 편리성을 높인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한옥에 반영된 현대기술과 그에 따른 한옥의 변화를 조명해본다.

◇과학을 품은 한옥

최근 한옥에 사용되는 건축재는 다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한옥이 목구조만을 이용해 지어졌다면 오늘날 대부분의 한옥은 하부에는 현대식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사용해 견고함을 높이고 상부에는 전통 목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또 한옥 건설과정에서 흙이나 나무 등의 자연 재료에 콘크리트를 섞어 벽체의 내구성을 높이기도 한다.

한옥이 대중들의 주거공간이 되지 못했던 주이유인 평당 천만원이 훌쩍 넘는 비싼 건설비용과 긴 건축기간도 해결됐다. 올해 초 한옥에 모듈링 기법이 도입되면서 건축비용을 일반 한옥의 반값으로 줄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모듈형 한옥은 사전에 공장에서 부품가공 및 조립 등 공정의 80%를 진행한 뒤, 현장에서는 설치만 하는 프리패브(prefab) 방식에 따라 지어진다.

모듈형 한옥은 공장에서 표준화된 수치에 따라 벽체와 창호, 문, 온돌, 기와 등의 자재를 균일하게 가공했기 때문에 시공단계에서는 표준화된 시공법에 따라 쉽고 빠르게 건설할 수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왕우철 연구원은 “가로, 세로, 높이 각각 2,700, 3,300, 2,400의 암묵치수(실제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치수)로 표준화한 모듈 네 개만 합치면 12평의 한옥이 된다”며 “현장에서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돼 인건비 지출이 심했던 기존 한옥시공과 다르게 모듈형 한옥은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한옥이 보다 대중화될 수 있도록 고안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옥 정보화 모델링(HIM)이 상용화되면 한옥 짓기는 더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건축가 조전환씨가 최근 개발한 HIM은 3차원 설계 프로그램 건축정보모델링(BIM)을 한옥건축에 알맞게 적용한 3차원 설계 시스템이다. 이는 기존 2D 기반의 CAD도면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정보를 3D 입체설계를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HIM을 사용하면 한옥의 구성요소와 공정방식이 모두 데이터로 구축돼 한옥의 공정기간, 공정절차, 디자인 설계비용, 자재의 양, 부품의 수치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다. HIM을 사용해 경주의 한옥호텔 라궁을 비롯한 여러 현대식 한옥을 지은 조전환씨는 “한옥 짓는 법을 배우는 데 최소 5년 이상이 걸려 현대건축 전공자들이 한옥을 지을 엄두를 못내고 있다”며 “현대건축 전공자도 한옥 건축에 보다 쉽게 접근해 한옥의 대중화에 이바지하기를 바랐다”고 HIM을 만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사진 제공: 박승원


◇현대 양식을 담은 한옥

한옥내부도 차츰 현대적 생활양식을 기술적으로 반영해나가는 추세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한옥 내부공간의 구성에 있다. 우리나라 전통가옥은 부엌과 화장실이 집과 분리돼 있었지만 요즘 대부분의 한옥은 부엌과 화장실을 한옥 내부로 들여 주거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목재 방수처리 기술과 타일을 사용해 한옥 안에도 현대적인 화장실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으며 불연재를 사용해 만든 부엌에는 화재 방지시설을 설치해 화재 위험을 한 차례 더 방지하고 있다. 또 근래에는 방과 마루가 간편히 연결되도록 벽과 문을 트는 시도도 종종 나타난다.

현대한옥의 내부공간 구성은 수평적인 차원에서만 변한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한옥 골조양식에 실용성을 가미해 위아래로 층을 더한 현대의 한옥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한옥을 지을 때, 건축과 난방에 어려움이 있어 복층형식보다는 단층형식으로 짓기를 선호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건축기술을 접목해 지하에 별도로 생활공간을 만들거나 층을 쌓아 이용공간을 늘리고 있다. 2009년 ‘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본상을 받은 ‘집운헌’에는 이같은 한옥의 실용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현대식 철근콘크리트조로 지어진 집운헌의 하단부에는 지하층이 조성돼 차고 및 서재, 수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서울 사대문 안에 100년만에 다시 나타난 2층 한옥 ‘관훈재’(사진)에는 집안에 뜰을 들이고, 빗물 처리를 위한 시설인 목챙을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새로운 건축 요소가 도입됐다. 관훈재 2층에서 찻집을 운영 중인 박승원씨는 “도심 속 3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2층 한옥을 지었다”고 건축의도를 말했다.

일부 건축가들은 한옥의 낮은 단열성을 높이기 위해 한옥에 이중문을 설치하거나 창호지 대신 통유리를 사용해 단열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한옥은 안팎이 트인 내부구조로 인해 집안의 냉·난방조절이 어렵고 목조건축물 특성상 배수와 빗물처리가 원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7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그린한옥’은 특히 단열과 기밀에 뛰어난 건물이다. ‘그린한옥’은 전통 목구조 형태로 지어졌지만 그 내부를 구성하는 벽재나 지붕, 온돌, 창에는 최첨단 단열공법이 적용돼 있다. 그린한옥은 겨울철에는 난방에너지 비용을 일반 한옥에 비해 90% 정도 절약할 수 있고, 여름철에는 외부의 열기를 차단해 냉방비 절약효과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옥이 생각 외로 에너지를 대량으로 손실하는 구조체”라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태중 연구원은 “에너지손실 대폭절감을 통해 현대인들이 냉·난방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한옥을 구상하게 됐다”고 전했다.

한옥의 단점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노력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했음을 방증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한옥의 보급화로 이어질 수 있는 첫 단추이기도 하다. 이렇게 점차 편한 보금자리로써의 한옥을 만들어 가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만의 ‘건축학개론’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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