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경제전문지 「Forbes」(포브스)는 가장 열악한 전공 분야 10개를 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1위로 인류학·고고학이 선정되었다. 내 전공 분야가 그다지 인기가 있는 것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야 자명하나, 이렇게 최악의 전공 1위로 못 박히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자못 씁쓸했다. 자료를 들여다보니 대졸 신입 및 중견의 실업률과 연봉을 토대로 한 것인데, 순위가 매겨진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싶게 비슷비슷한 수치를 열거하며 문학, 역사학, 철학, 종교학 등 인문학 분야와 음악, 미술, 영화, 사진 등 예술 분야가 10위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마침 고고학, 인류학 분야의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지방의 대학 박물관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인류학 박사학위를 막 취득하고 장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연구원, 고고학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동시에 곧 태어날 아이와 가족을 부양할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 대학원생 등 공동연구에 참여한 이른바 학문 후속 세대들은 한동안 기사를 이리저리 분석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미국과 한국의 다른 상황, 조사 방법과 기준의 타당성 등을 놓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연구원들은 어느 순간 “그런데 왜 삶의 만족도는 보지 않는 거지?”라고 반문하더니 자신들에게 주어진 유물 분석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이들의 결론 속에서 현재의 불안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한 전공과 현재의 삶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자부심을 엿보았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이른바 인기학과가 되어 본 적이 없는 분야에 몸담고 있다 보니 이런 소식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별다른 고민 없이 당연하다는 듯 연봉과 실업률을 기준으로 최상의 전공, 최악의 전공 1위, 2위, 3위라고 순서를 매기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 세태와 경제 불황이 맞물리며,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어 버렸다.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은 안정된 직장을 얻는 데 가장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에 귀결된다.

전공 선택이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른바 인기학과에 진입하고 싶은데 경쟁률이 높아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 전공을 선택하려 하는지 물으면, 부모님께서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전공이 좋다고 조언해 주셨다는 대답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묻곤 한다. 질문을 받고 잠시 멈칫 하며 당황하는 학생들도 있고, 때로는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아직 10대 후반, 20대 초반, 자신의 앞에 펼쳐진 인생에 대해 꿈꾸고 방황하고 그러다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나이라고 하면 무책임한 것일까?

입시철이다. 올해도 수십만의 학생들이 대학과 전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내년 봄 ‘최악의 전공’을 선택해 우리 학과에 입학할 신입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전공을 결정하고 학과를 선택한 것일지 궁금하다. 어떤 꿈을, 고민을, 사연을 지니고 있을지, 이들에게 어떤 대학생활을 제시해 주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물질적 풍요와 성공이 인생의 목적이라 교육받고, 이를 이루기 위해 청소년기 내내 입시 전쟁 속에 숨차게 달려온 학생들에게 대학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규모의 직업 훈련 학교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인가? 오히려 오늘날의 대학은 학생들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고민하고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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