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07년 대선 즈음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업무를 못한 편이거나 매우 못하였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72.4%에 달했다. 그리고 이는 노무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유권자 중 19%만 정동영 후보에 투표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었다.

다른 장면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실제 2012년 총선 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업무를 잘못했다는 말에 매우 공감하거나 대체로 공감하는 사람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했다고 평가한 유권자 중 40%나 새누리당에 투표했던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게시물 당 가장 많은 ‘좋아요’가 달리는 정치인은 다름 아닌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페이지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알 것이다. 그는 단풍 사진을 올리며 감상적인 이야기를 적기도 하고, 여행에서 찍은 ‘셀카’를 올리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도 그는 ‘행복한’ 대통령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 당선된 대통령 중 유일하게 탈당의 압력을 받지 않았다. 또 언론에서도 그를 언급하지 않는다. 최근 「한겨례」에서는 “MB가 사라졌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은 ‘행복’하게 ‘행불’됐다.

선거연구의 고전인 키(V. O. Key)의 『책임 있는 유권자』에 따르면, “민주주의에서 인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집권당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이다. 즉, 선거는 권력을 담당한 이들을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장치인 것이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의 키워드는 “MB 심판”이었다. 그리고 그 무기로는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복지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대선을 한 달 남겨둔 지금, 어느 후보도 “MB 심판”을 말하지 않는다. 한 때 ‘이명박근혜’가 있었던 자리를 ‘문철수’가 채우고 있고, ‘보편적 복지’가 있었던 자리에는 보통 국민들의 의제 범위에 없었던 ‘정치 혁신’이 들어섰다.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양극화의 극복이라는 회고적(retrospective) 이슈가 알 수 없는 집합체인 ‘기존 정치권’에 대한 비토 및 정치 혁신이라는 전망적(prospective) 이슈로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63%가 경제 관련 이슈(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경제 민주화, 복지 확대)라고 답했다. 반면 정치 개혁이라고 답한 이는 8.5%에 불과했다.

흔히 승부의 세계에서는 냉정하게도 승자만 기억된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는 더욱 냉정하다. 선거에서 승자는 기억될 뿐만 아니라, ‘인민의 평결’을 받았다는 도덕적 권위까지 가지게 된다. 선거에서 패한 자는 단순히 기억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도덕적인 낙인까지 찍히게 된다.

나는 2012년 대선이 이명박 대통령의 공과가 엄밀히 평가되는 장이었으면 한다. 그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사법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민의 평결’이라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5년간 한 나라의 수장이었던 사람에 대해서 평가 한 번 내리지 못 한다는 것은 비극이지 않은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행방불명인가보다. 누가 ‘미아’를 찾아올 것인가? 나는 아직도 이것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제일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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