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로맨스로 비치는 대선과정
세 후보의 에피소드에 정책경쟁 가려져
대선의 실제적 주인공인 국민 위해
적극적 정책경쟁 요구돼

얼마 전 영화 「늑대소년」을 봤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동화적 정경과 두 청춘 남녀 배우들의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겨울이 시작될 무렵 때맞춰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었던 것일까. 최근 누적관객 수 400만명을 넘기며 한국 멜로 영화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보유하게 된 이 영화의 위용에 걸맞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객석은 한동안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인간성조차 분해하는 각종 해체주의와 여러 파격적 사상이 출현과 퇴장을 반복했던 현대에도 애절한 로맨스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던 것을 보면 낭만적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역시 인간의 영원한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채워져야 할 낭만이 「늑대소년」으로는 조금 부족했던 탓일까. 치열한 전장을 연상케 했던 정치판에서도 ‘낭만적 사랑’ 담론이 움트고 있다. 공교롭게도 영화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무소속 대통령 후보안철수와 ‘대한민국 남자’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후보의 최근 단일화 협상을 둘러싼 일들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다투는 연인들의 모습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단일화 행보들을 연인들 사이에 으레 벌어질 수 있는 언쟁과 오해 상황에 빗댄 네티즌들의 재기에 다만 허탈하게 웃을 일만은 아니다. 후보 등록을 며칠 앞두고 정치 공학적 판세만이 이번 대선의 주가 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느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정책 경쟁에 대한 의지 없이 각각 어느 정도 고정된 지지율을 바탕으로 여러 상황별 변동 수치들을 계산하기에 급급한 것 같은 지금 상황은 세 후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소통’이 철저히 자신의 대선승리를 전제로 언급된 가치인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자아낸다.

국민을 영락없는 낭만적 대서사 극의 관객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언론도 이 씁쓸함을 방조하고 있다. 갈등하는 두 사람이 역경과 고비를 넘어 연출할 감동의 엔딩 장면을 최대한 극적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문학적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매번 지면을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는 ‘주연’ 대선 후보들의 자잘한 ‘밀당’ 에피소드들을 볼 때마다 문득 이 드라마에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빠져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언론마다 방향이나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 기삿거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은 구애 대상자의 상대역끼리 벌이는 신경전이라니 이래서야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누구든 선택이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극의 기본적인 구성에서 다소 초점을 달리한 ‘번외편’이 전체적인 극을 참신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주인공의 애정을 놓고 경쟁하는 배역들의 또 다른 낭만적 로맨스극의 비중이 날로 커져 주객전도되는 시나리오는 아무래도 과도한 ‘아방가르드’다.

대선이라는 파격적인 로맨스물의 주인공은 단연 국민이어야 하지 않을까? ‘낭만’이 지나간 무대에 계속 서서 5년간의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이는 바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여리고 순진한 주인공이야 구애하는 상대 배역들의 피 튀기는 경쟁에 마음이 꽤나 아플지 모르겠지만 치열하고 적극적인 정책 경쟁에 선택이 어려워져 고민할 국민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많을수록 좋다.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던 영화 「늑대소년」의 주인공 철수가 여주인공에게 바치는 순애보에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가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을 사랑하는 늑대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철수와 달리 국민들이 마냥 ‘기다려’ 관망만 하기에는 해피엔딩에 도달하기 위한 개연성이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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