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공장 리남수

닭공장 리남수
김정현

리남수가 평남 제1닭공장 감리(監理)계를 찾은 것은 목요일 늦은 오후였다. 감리원은 표정없이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다 리남수를 맞이했다. 지도반장은 이미 퇴근하고 없었다.

“어, 남수 씨 아닌가. 무슨 일입니까?”

감리원 박선일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화투패가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남수는 그 패를 화투라고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남연방에서 파견을 나온 공장 감리계원들이나 시(市) 행정위원회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종종 목격했던 그였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큰 관심을 두지 않다가, 언젠가 동료 작업원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다가 화투라는 이름을 듣게 됐다.

남수는 아직 닭기름이 남아 있는 것처럼 끈적이는 손을 인민복 상의에 쓱쓱 문지르며 말했다.

“저, 금요일 오후에 설엘 좀 다녀올까 하는데.”

쭈뼛쭈뼛 이야기를 꺼내는 남수의 얼굴 곳곳에 들어선 주름 때문에 이제 오십줄에 들어선 그는 실제보다 한참 더 나이가 들어보였다.

“벌써 그리 됐습니까?”

박선일은 잠시 모니터에 시선을 더 던지다가 말씨만큼이나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책꽂이를 뒤적였다.

“어디 봅시다. 이달 출입기록지가...”

박이 기록지를 찾는 동안 남수는 고개를 돌려 모두 퇴근하고 난 뒤의 감리사무소를 돌아다보았다. 책상 세 개와 단촐한 집기, 아직 리본이 달린 화분 두엇이 전부인 사무소에서는 새칠한 페인트 냄새가 가볍게 진동했다.

“아, 여기 있구만 그래.”

볼펜을 집어든 박선일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기록지를 넘겼다.

그는 충청도 어디가 고향이라고 했다. 남수에겐 낯선 지명이었다. 다만 ‘산’으로 끝나는 이름이었다는 정도만 뇌리에 어렴풋했다.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며 행동이 굼뜨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 가운데 작업원들 사이에서 ‘돌 굴러가유’라는 말이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누군가 그 말을 꺼내면 한 쪽에서는 ‘두 갠디!’하고 받아치며 낄낄거리곤 했다.

감리원은 남수의 출입기록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고는, 쥐고 있던 볼펜 뒤축을 종이 위에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거 참, 격주로 바쁘십니다.”

“딸애 때문에 말이오.”

남수는 소매끝을 매만지며 평안도 특유의 빠른 말투로 대답했다.

“예예, 저도 압니다.”

감리원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 학교 가서 방문확인증 하나 받아 오셔야 되는 것 아시죠? 여기 서명하시고.”

남수는 무심하게 볼펜을 놀렸다. 기록지의 한 구석에 ‘리남수’와 ‘박선일’이라는 서명이 조그맣게 남았다. 감리원이 기록지를 제자리에 넣는 것을 뒤로 하고 남수는 말없이 문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갈까, 하다 남수는 뒤를 돌아 ‘수고하시오’ 하고 목례를 했다. 턱을 괸 채 컴퓨터에 집중하던 박이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받았다.

감리계를 나온 남수는 닭공장을 한바퀴 휘 둘러보았다. 평안남도 회창군 철봉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평남제1닭공장은, 주변에 드문드문 있는 공공기업소 가운데 한 곳이었다. 공장이래봤자 가건물로 세운 양계장 세 동과 감리사무소로 쓰는 컨테이너 박스 두개가 전부였다. 작업원 여섯, 남쪽에서 파견을 나온 감리원과 인민위원회 소속의 지도반장까지 도합 팔 명이 복무하는 작은 공장.

남수는 공장 한복판을 가로질러 차들이 다니는 길가로 나섰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넣어둔 손목시계를 꺼냈다. 인조가죽으로 된 시계띠는 닳아서 반들반들했다. ‘평남제1닭공장준공기념’이라는 글씨 위로 초침이 따각따각 흘러갔다.

시계를 받은지 일년도 더 됐지만 남수는 늘 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손목시계가 갑갑해 차고 있는 것이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마다 넣어둔 놈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여섯시 이십칠 분. 남수는 공장 앞 비포장도로에서 주거구인 읍으로 가는 마지막 통근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산골짝 도로를 지나는 동안 통근버스에 탄 작업원 몇몇이 멍한 표정으로 지는 녘을 바라보았다. 먼 산비탈엔 새로 심은 나무들이 보였다. 심을 시기를 놓친 데다, 지력이 다한 땅 표층에 겨우 뿌리를 박고 선 나무는 시들시들했다. 할당된 식수(植樹) 계획을 차질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인민반¹ 반장의 성화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일굴 필요가 없어진 뙈기밭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장 나무 심는 일은 필요했다. 산이란 산을 모조리 밭으로 삼아서 꼭 넝마를 기운 꼬락서니 같던 십여 년 전의 풍경에 비하면 그나마 보기가 나았다. 남수는 알이 성근 옥수수나마 포대로 챙기기 위해 뙤약볕 아래서 거의 매일 산을 오르내렸던 기억을 떠올리곤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호시절일세... 호시절.”

귀가한 남수는 부인이 뒤꼍으로 가서 저녁으로 쓸 옥수수 가루를 퍼오는 동안 짐을 쌌다. 금요일 오전 분공(分工)이 끝나면 조퇴를 해서 바로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짐이래봤자 갈아입을 옷 몇 벌과 공민증, 체류허가서 따위 서류가 담긴 누런 종이봉투가 전부였다.

“따로 챙길 건 없댑니까?”

한쪽다리가 건들건들하는 밥상에 앉아 죽을 푸는 남수에게 부인이 물었다. 큰딸 미령이도 눈빛으로 제 어미를 거들었다.

“공장서 닭이나 몇 마리 사 들구 갈까.”

혼잣말처럼 던지고 나서 금세 죽그릇에 고개를 파묻었다. 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반씩 섞은 죽이었다. 가끔 밥을 지어 먹기도 했지만 남수는 죽이 좋았다. 쌀밥은 어쩐지 속이 받쳐서 매 끼니 먹기가 거북스러웠기 때문이다. 미령이는 못내 불만이었지만 대놓고 토를 달진 않았다. 예전처럼 없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니고, 모자라면 더 먹으면 그만이었다.

*

파주행 버스 위로 투닥투닥 비가 쌓인다. 남수가 탄 버스는 금요일 오후, 주말을 앞두고 남쪽으로 향하는 차량들과 함께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짐을 잔뜩 실은 차량들이 자주 달리는 탓에 길은 드문드문 아스팔트가 패여 있었다. 그런 곳을 지날 때마다 차는 덜컹거리면서 물보라를 일으켰다. 대형 화물차들 사이로 관광버스와 공무용 승합차도 꽤 보였다.

남수가 월차까지 써가며 금요일 오후에 조퇴를 하는 것은 그의 형수인 정경희 덕분이었다.

“월차라니, 그게 뭡니까?”

남수가 막내 소령이를 파주에 살고 있는 정경희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날, 경희는 남수에게 소령이를 만나러 올 때 월차를 쓰라고 일러주었다.

“매월 쓸 수 있는 휴가예요. 주중에 일찍 조퇴를 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내려오시면 될 것 같은데... 공공기업소 근로자도 동일한 연방 노동법 적용대상이니까, 쓸 수 있어요.”

남수가 어리둥절해하자 팔짱을 낀 채 생각을 정리하던 정경희가 웃으며 덧붙였다.

“담당자한테 얘기하면 알아서 처리해 줄 거예요.”

그 이튿날 남수가 감리계를 찾아 월차 얘기를 꺼내자 박선일은 난감해했다.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남수는 그 자리에서 경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경희는 감리계원과 직접 전화를 바꾸어달라고 했고, 통화한 지 십분도 채 못 미쳐 박선일은 월차계를 써주었다. 전화를 끊은 박선일은 전화통을 향해 시끄러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좋은 친척을 두셨구만” 하고 피식 웃었다. 그로부터 남수는 2주에 한 번씩 금요일 오후에 조퇴를 하고 파주로 향했다.

두 시간 반쯤 달린 차는 연방의 북남을 잇는 주요 도로 가운데 가장 큰 출입관리처가 자리한 개성에 멈추어 섰다. 검사원이 버스에 탄 사람들의 공민증과 체류허가서를 건성으로 확인하는 동안 남수는 물을 튀기며 내달리는 트럭들에 눈을 두었다.

“뒤로 빼다 박을 생산품 있으면 귀띔 좀 해주고 그러슈.”

언젠가 박선일이 점심 식사 후에 작업원들이 모여 담배를 피는 자리에서 생소한 제안을 했다.

“사실 닭은 뭐 돌려봤자 몇 프로 떨어지는 것도 없겠지만, 어쨌든 여기서 서울까지는 갈만 한 거리 아닙니까?”

박선일은 냉동고에 남은 채로 신선도가 떨어져서 월이나 분기 말에 작업원들에게 싼값에 처리해버리는 닭들을 빼돌리면 된다고 했다. 닭공장을 비롯 북연방에 속속들이 세워진 대다수 작업장들이 공공기업소였던 까닭에, 출하관리가 허술한 경우가 많았다. 이익을 내기 위해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고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기업소의 일차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생산품이 모자라거나 넘칠 때엔 해당 수량을 이월시켜서 가공 목표를 조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수가 일하는 곳을 비롯한 인근의 여러 닭공장에서 가공된 계육의 절반가량은 개성 이남 서울 경기 권역으로 향했고 남은 것들 가운데서 다시 절반이 평양 등지로, 그리고 일부가 강원도와 황해도 등지에서 소비되었다. 그러고도 남은, 초과가공품은 거의 헐값에 작업원들에게 분배되었는데 인근의 닭공장 것까지 포함하면 대략 분기에 천 내지 천 오백 마리 정도를 처분할 수 있었다. 박선일은 이 부분을 물고 늘어진 것이었다.
박의 제안에 과거 장마당에서 굴러먹던 눈치 빠른 한 작업원은 찬동의 뜻을 비치기도 했으나, 나머지는 별 말이 없었다. 남수가 물었다.

“밀수 말입네까?”

“그런 셈이죠. 굳이 따지자면.”

가끔 가발이나 전자기계 반조립품 같이 가볍고 작은 고가의 물건들이 밀수 중에 적발되기도 했다. 운송 과정에서 감리계의 검열을 무사히 넘긴 뒤 출입관리처에서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개성에서 남로(南路)로 빠지는 한길에다 차를 대놓고 다른 차량에 옮겨 싣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출하 때도 아닌데 냉동고가 딸린 트럭을 공장까지 대절하는 것을 비롯해 여간 번거로운 일이 한둘이 아닐 성싶었다. 게다가 이문을 남기는 장사라는 것 자체가 작업원 대부분에게 낯설어 달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박선일의 제안은 금방 없던 일이 되었다.

*

“피곤하시지요? 오시자마자.”

“아니 저야 머... 형수님이야말루 직장에서 곧장 오신 거 아닙니까?”

경희는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남수의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끌고 나왔다. 출판단지에서 일하는 경희로서는 갑갑한 사무실에서 빠져나올 핑계가 생겨 고마웠다. 이제 얼굴을 익힌 지 이년 남짓 된 남수 덕분에 지난 3월부턴 한 달에 두 번, 평일인데도 조금 일찍 사무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동료들은 경희에게 ‘어려운 처지의 북한 친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소령이 나올 시간 맞춰서 잘 오셨네요.”

남수는 멋쩍게 웃었다.

“허허. 예.”

사실은 남수가 부러 소령이의 하교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매번 그렇게 맞아떨어졌을 뿐이었다. 경희도 알고 있었지만 인사 겸 그 말을 꺼내곤 했다. 아이를 거의 맡아두다시피 하는 남수로선 그런 이야기나마 주고받는 편이 조금 덜 미안했다. 경희도 이제는 거의 남이 되어버린-경희는 한달 전 이혼했다-전 남편의 사촌인 남수와 그 딸 소령이를 매개로 어떤 가족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특히 애들을 생각하면 그랬다.

차는 파주터미널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특수학교로 향했다. 비는 그쳤고, 물안개가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도로 양편으로 가로수가 유령처럼 나타나 스쳐갔다. 퇴근 시간 전이라 차도 별로 없어서 분위기는 으스스했다.

“소령이가요,”

한참을 말이 없이 운전만 하던 경희가 학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입을 뗐다.

“첫 달거리를 했대요. 담당 선생님이 그러더라구요.”

남수는 뭐라 대답하기 남세스러워서 웃음만 터뜨렸다.

“아, 예.”

“소령이 줄 선물로 꽃을 하나 사서 트렁크에 넣어뒀거든요. 이따 꺼내 드릴 테니까 소령이 나오면 직접 주시는 거예요.”

대답 대신 남수는 또 말없이 허헛, 웃었다.

“소영이 아버지 오셨어요?”

소령이의 담당 교사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구석 소파에 앉아 있던 남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담당 교사와 가볍게 악수를 했다.

처음에 남수는 학교에서 소령이를 ‘소영’이라고 부르는 것이 귀에 거슬렸다. 몇 번을 계속해 듣다 보니 그 이름도 괜찮았다. 이제는 집에 가서도 가끔 ‘소영이, 소영이’하고 말하곤 했다.

담당 교사가 마실 것을 준비하는 동안 주차를 하고 뒤늦게 들어온 경희도 교무실에 들어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남수 옆에 앉았다. 믹스 커피 세 잔을 내온 담당 교사는 자리에 앉아 커피 잔을 들었다. 젊은 사람치고는 손마디가 거칠고 굵었다. 그는 일전에 자신이 배구 선수였다는 이야길 했었다.

“소영이가 첫 생리를 했습니다.”

배구 선수 출신의 담당 교사의 이야기는 다소 뜬금없었으나, 덕분에 남수 옆에 앉아 있던 경희가 풋, 웃었다. 남수가 말했다.

“형수님한테 그 얘긴 벌써 들었슴다.”

담당 교사는 “아 그러셨군요,”하고는 소영이가 지난 두 주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으며, 학교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연초 우여곡절 끝에 입학 수순을 마치고 소령이가 학교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낯선 환경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령이는 탈없이 또래들과 어울렸고 점점 더 밝아졌다.

소령이는 엄밀히 따지면 셋째였다. 미령이를 낳고 세 해 뒤 겨울에 사내애가 태어났다. 하지만 그 애는 얼마지 않아 이름도 받기 전에 앓다가 죽었다. 다시 삼 년 뒤에 소령이가 태어났다.

소령이가 병을 얻은 건 네 살 때였다. 초여름에 언니와 풀숲에서 놀다가 들어온 며칠 뒤부터 열이 심하게 올랐다. 약도 약이지만 먹을 것도 없는 철이었다. 간신히 풀죽을 쑤어서 입으로 떠 넣으면 그대로 게워냈다. 며칠을 앓은 끝에 읍에 있는 인민병원으로 아이를 업고 갔다. 의사는 진찰을 하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살기 힘들겠소. 데려가시오.”

그 무렵 남수는 탄광소에서 일했다. 소령이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며칠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탄을 캐는 내내 아이의 모습이 삼삼했다. 다른 수가 없어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이는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았다. 주변에서는 수령님 은혜라고 소문이 났다. 어린 목숨을 부지한 소령이는 다리를 약간 절고 말을 더듬었다. 나중에 경희를 통해 남쪽 병원에서 진찰한 결과로는 바이러스 염증으로 인한 뇌성마비, 뇌병변이라고 했다. 때문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때엔 동무들이고 선생이고 눈밖에나서 고초를 많이 겪었다. 입학 초에 특히 심했는데, 모서리를 먹이는 건² 예사였고 더러 손찌검을 하는 패들도 있어서 남수 처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자주 보였다. 배급도 적었다.

그래도 소령이는 성격이 온건해서 집에서 곧잘 웃었다. 그 꼴이 더 병신 같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남쪽 문이 열리면서부터는 그런 것이 다 완화가 됐다. 보이지 않는 사람차별이야 여전했지만 대놓고 박대를 하진 않았다. 가끔 진찰을 받을 기회도 있었다.

그 무렵부터 남수는 닭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석유가 들어오면서 탄 채굴을 많이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신 식량 수요 때문에 닭공장이 들어서면서 날이 따뜻한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닭공장에서, 겨울에는 하던 대로 탄을 캤다.

형수를 만난 것은 1년 반 남짓 됐다. 십여 년 전 쯤 흩어진 가족 교환 방문을 하던 때에 남수의 아버지와 남쪽 사는 삼촌이 만난 게 인연이 되어, 연방 인적교류 자유화 조치가 단행된 이듬해에 연락이 닿은 것이다. 북남간 여행은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가족간 방문은 사전 수속만 밟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남수의 아버지도 삼촌도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것은 데면데면한 사촌 형뿐이었지만 그래도 만났다. 그래도 피붙이니까 만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피차 했기 때문이다.

“어머나, 애가 어쩜 이렇게 똘망똘망해요?”

경희는 처음부터 소령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들한테 관심 가지는 거야 이상할 게 없었지만 낯설 정도였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남수 내외는 경희가 잔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남수 사촌 형인, 경희 남편의 바람기도 거기에 한몫 했다. 속사정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였지만.

소령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경희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특수학교 입학을 알아봐주었다. 그러나 거주지 문제에다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입학은 여의치 않았다. 교육지원청도, 시 당국도 신청을 반려했다. 남수도 별 기대를 안 했다.

그러다 경희가 아직 이혼을 하기 전인 지난 연말에 남수네 가족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방송 얘기를 꺼냈다. 놀란 건 처였다.

“예에? 테레비 방송을 말이요?”

“이렇게 딱한 처지에, 어떻게 보고만 있겠어요. 눈 딱 감구, 하루만 시간을 내 줘요.”

이튿날 방송카메라와 함께 촬영팀이 경희네 집을 찾았다. 경희네 남편은 애시당초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출근해 있느라 신경을 두지 않았다. 얼결에 남수는 딸이 병을 얻게 된 경위와 지금 사는 형편을 이야기했다. 소령이의 모습도 한참을 찍어 갔다.

딱한 사연이 전파를 타자 즉각 사람들의 반응이 왔다. 교류가 시작된 이래로 북연방의 만성적인 식량난과 그 피해에 대한 동정론이 조성된 시기였다. 거기에 더해 소령이 이야기는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튿날 남수 가족들은 모두 회창으로 돌아갔고 그 뒤 여러 날 동안 경희는 소령이와 남수 내외를 대신해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성금만 수천만 원이 모였고 경희는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 남수 명의로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경희는 파주에 생긴 지 얼마지 않은 특수학교 입학 허가 신청서를 냈다. 관계 당국은 이번에도 입학신청을 반려했다. 경희는 소령이와 같은 사례가 계속해서 나타날 경우 감당해야 하는 복지비 부담을 지자체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찌감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거리를 두고 싶어했다. 결국 경희는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얻어 행정소송을 준비했다. 언론에 계속 이야기를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쩔쩔맸다. 항의전화가 빗발쳤고 사람들의 관심은 시들 줄 몰랐다. 여당 소속인 지역 국회의원까지 압력을 행사했다. 난처해진 시청과 교육지원청이 결국 도청을 통해 연방 교류담당과에 소령이의 입학허가를 문의했다. 교류담당과는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로 입학허가를 내줄 것을 권고했고, 소령이는 올 봄에 자운학교에 입학했다.

상담을 마친 남수와 경희는 담당 교사의 배웅을 뒤로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남수의 품에는 경희가 트렁크에서 꺼내준 연분홍 프리지어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소령이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노란색 등교버스 곁에서 동무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소령이는 남수와 경희를 발견하자 금방 달려왔다. 남수가 아무 말도 없이 멀뚱멀뚱 서 있자 경희가 귀띔했다.

“뭐래두 한 마디 하세요.”

남수는 소령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축하한다.”

한 마디 뿐이었다.

다른 말없이 꽃을 건네는 아버지 앞에서 소령이는 환하게 웃었다. ‘천진난만’이 꽃말인 프리지어와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경희가 말을 보탰다.

“소령아. 아빠가 이제 소령이 숙녀 됐다구 선물로 주는 거야.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 고맙습니다. 아버지!”

남수는 거친 손으로 소령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

세 사람이 경희네 집에 도착한 것은 일곱 시가 조금 못 미친 시각이었다. 남수가 가져 온 생닭의 핏물을 빼는 동안 경희는 근처 슈퍼에 장을 보러 갔다.

신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스무 평 남짓한 빌라에는 경희와 경희의 두 딸 그리고 봄부터 함께 살게 된 소령이까지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남수는 매번 파주에 들를 때마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소령이가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할 무렵부터 경희와 남편 사이는 좋지 않았다. 자연히 남수 내외 역시 경희의 남편과 차츰 멀어졌다.

경희의 두 딸 지영이와 지은이는 각각 열두 살, 열 살로 소령이와 제법 터울이 났다. 경희 말에 따르면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놀아서 집을 비워도 걱정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아버지, 이거.”

거실로 나오는 남수에게 소령이가 꽃을 한 송이 들이밀었다. 아까 건네 준 프리지어 꽃다발에서 빼낸 것이었다. 연분홍 꽃송이가 남수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늘어뜨린 채 다가왔다. 같이 놀던 지영이와 지은이는 저만치 떨어져서 부녀가 하는 양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남수가 꽃을 건네받자 소령이는 아이들 쪽으로 가더니, 셋이서 남은 꽃다발을 가운데 놓고 키들키들 알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남수는 거실에 쌓여 있는 책가지들을 한쪽으로 물리고 소파에 앉았다. 한 손에 꽃송이를 든 채였다. 남은 손으로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켜자 졸음이 밀려왔다. 남수는 그 자리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흙먼지가 풀풀 솟는, 좁은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남수는 빈 포대자루를 쥔 채로 극심한 허기 속에서 숨을 헐떡거렸다. 그가 걷는 길은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간신히 나 있었다.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산꼭대기부터 능선을 따라 저 아래쪽에 이르기까지, 마치 곡예를 하듯 옥수수 줄기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벼랑 아래로 내다보이는 것은 강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너머까지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갔다.

아래를 내려다 보던 남수는 아득함을 느꼈다. 뒤쪽에선 비탈이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고, 흙더미에 파묻힌 낡은 가옥들 속에서 사람들이 기어나왔다. 모두 병들고 굶주려 입성이 추레했다. 남수는 용을 쓰며 전진했다. 그리고 벼랑을 향해 치솟은 옥수수줄기에 손을 뻗쳐 간신히 따낸 옥수수를 쉬지 않고 포대기에 담았다. 담고 담아도 포대기는 더 헐렁해지기만 했다. 뜨거운 뙤약볕은 등판을 내리쪼았다. 허기와 열기를 견딜 수 없게 된 남수는 내리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태양, 태양빛을 반사하는 강물은 죽음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견디지 못한 남수는 허공을 바라고 뛰어내렸다...

“소령이 아빠?”

경희의 목소리였다. 남수는 잠에서 깼다. 포대자루인줄 알고 꽉 움켜쥔 프리지어는 축 늘어진 채였다.

“아... 후우, 이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구만.”

“식사하셔야죠?”

꿈속에서 느낀 허기는 헛것이 아니었다. 식은땀을 쓸어내리는 남수가 안돼 보였는지 경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너무 무리해서 내려오셨나 보네요.”

남수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없습니다. 거, 담배나 한 대 피고 오갔소. 참, 애들은 다 잘 먹였습니까?”

“네, 그새 다 먹었죠. 워낙 피로해하시는 것 같아서 일부러 안 깨웠어요.”

남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빌라 1층 출입구 옆에서 담배를 피는 동안 남수는 흐릿하게 남아 있는 꿈의 흔적을 떨치기 위해 연신 머리를 쓸어넘겼다. 내뱉은 담배연기가 길 저편의 안개 쪽으로 흩뿌리듯 사라졌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남수를 맞은 건 방에서 들려온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이윽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부엌에 있던 경희가 소리가 나는 방 쪽으로 가는데 문이 열리면서 경희네 둘째가 울상이 되어 나왔다.

“엄마으아-!”

잠옷 차림의 첫째는 한쪽 겨드랑이에 인형을 낀 채 뾰루퉁한 표정으로 문간에서 동생을 쏘아보았다. 소령이는 어수선한 와중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방바닥에 앉아 멍한 얼굴로 제 사촌동생들을 쳐다보았다.

“어, 언니가 나 꼬집었어...”

울먹이며 겨우 말을 잇는 둘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째가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둘째는 왼손으로 뺨 한쪽을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제 언니가 서 있던 쪽을 가리키며 엄마 품에 안겼다. 뭐가 그렇게 북받치는지 서럽게 우는 소리가 거실에 저렁저렁했다. 둘째를 다독이던 경희가 거실 복판에서 오도카니 서 있던 남수에게 저녁식사 하시라는 눈치를 주었다.

남수는 부엌 식탁으로 갔고, 방금 다시 덥혀놓은 닭볶음탕을 덜어 먹기 시작했다. 남수가 저녁을 먹는 사이 둘째 지은이가 울먹거리는 소리, 경희가 방 안쪽의 지영이와 실랑이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부엌 쪽으로 들렸다.

“장지영! 너 빨리 안 나올래?”

경희는 첫째의 이름을 부르며 잠긴 방문을 두드렸지만 거의 십분 가까이 요지부동이었다. 경희의 목소리가 높아져감에 따라 품에 안긴 둘째도 더욱 크게 울어댔고 방 안에 있던 소령이까지 훌쩍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첫째는 항복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경희가 둘째 편을 들며 다그치자 첫째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이 먼저 자기 인형을 멋대로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하소연하는 첫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그래도 언니가 그러면 안 되지”하며 첫째의 잘못을 짚었다. 그 사이 남수는 말없이 저녁식사를 했고 훌쩍이던 소령이도 가만히 앉아서 경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장지은.”

울음을 그치고 딸꾹질을 하던 둘째가 경희를 바라보았다. 잔뜩 부은 눈가에는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었다.

“지은이는 언니한테 언니 인형 뺏어서 미안해, 하고 얼른 사과해야지.”

둘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못했어 언니”하고 말했다.

사태가 수습되고 아이들을 다시 방으로 돌려보낸 뒤에야 경희는 부엌으로 들어왔다. 남수는 이미 식사를 마친 뒤였다. 경희는 물을 따라 남수에게 건넸다.

“참 정신 없죠, 전에 없이... 식사하시는 동안 시끄러우셨을 텐데.”

“놓구 나믄 딸애들이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남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애아빠랑 그런 것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 예민해져 있어요.”

남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희는 몇 분 정도 말없이 남수 맞은편에 앉아 있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럼 쉬세요. 내일 또 일찍 가셔야지요.”

“예. 형수님도 그럼.”

남수는 식탁을 조금 더 지키다가 냉수를 한잔 들이키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

남수가 자는 방은 현관 쪽으로 창이 나 있는, 원래는 서재로 쓰는 작은 방이었다. 벽면에 책꽂이가 자리잡아 넉넉지는 않지만 한 사람이 자기에는 충분했다. 불을 켠 채로 이불을 깔고 누운 남수는 책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름 모를 책들이 많았다. 그는 여태 살아오면서 별로 책을 읽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잠깐, 그리고 군에서 복무한 십년 동안 드문드문 인쇄물을 접했을 뿐이었다. 삶의 대부분 시간은 암흑과도 같았고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오느라 책이란 게 있는지도 잘 몰랐다.

때문에 남수는 경희를 처음 만났을 때 뭔지 모르게 매우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그저 남쪽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한 일년 쯤 지나서야 남수는 경희의 직업이, 그 삶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임을 알았다. 인텔리, 지식 노동, 그것은 수십 년 남수의 삶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요소였다.

책장을 보던 그는 곧 불을 끄고 반듯하게 누웠다. 하지만 머리가 점점 또렷해지며 갑갑증을 느꼈다. 책이 왈칵 쏟아져내릴 것 같기도 했다. 창밖 불빛이 방으로 새어든 것도 남수의 수면을 방해했다.

남수는 벌떡 일어나 걸치고 온 자켓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는 시계를 꺼내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비추어보았다. 아홉시 이십칠 분, 밖으로 나가기에도 방 안에 누워 있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문득 저쪽 방에서 다시 아이들 우는 소리가 났다. 경희가 아이들을 다그치는 소리가 울음 사이사이로 끼어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남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리고는 갖고 온 짐들과 옷가지를 챙겨 방문 소리가 나지 않게 거실로 나왔다. 방쪽의 인기척을 확인한 남수는 짐을 들고 조용히 현관을 빠져나갔다.

거리는 고요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가진 돈을 확인했다. 택시를 타면 가까운 터미널 정도까지는 갈 수 있을 만큼의 연방은행권이 몇 장 있었다. 개성까지만 가면 통행 서류 등으로 회창 가는 버스표를 교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수는 아직 입점하지 않은 상가들을 따라 펼쳐진 가로수 길을 한참 걸었다. 처음 경희의 집을 찾았을 때엔 비슷한 건물들이 계속 늘어선 풍경이 낯설어 길을 잃곤 했다. 그 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익혀 차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까지 가는 길 정도는 혼자 다닐 수 있게 됐다.

남수가 어둑한 골목에서 대로로 빠지는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 한 구석에서 토악질을 하는 무리와 만났다. 젊은 남자 둘이 부축을 한 채로 담벼락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한 명은 고개를 숙인 채로 방금 뱉어낸 것들의 위로 침을 틱틱 뱉었고 다른 한 쪽은 그 사람의 등을 두들겼다.

“어, 좀 살겠네.”

“씨바 그러게 왜 이렇게 술을 많이 처먹어.”

빠르게 지나쳐가는 그들에게서는 얼근한 알콜 냄새가 풍겼다.

남수는 퍼뜩 남쪽 출신 파견 감리계원들이 저희들끼리 모임을 한 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근 닭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들까지 한데 어울려 술을 먹고 나면 저런 꼴을 보이곤 했다. 남수는 그런 것들이 기이했다.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취할만큼 술을 먹은 적도, 혹은 게워낼 것이 있을 정도로 배불리 먹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처음에는 단순히 낯설기만 했던 저와 같은 풍경들이 어느 순간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남연방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경희와 그의 두 딸을 둘러싼-소령이가 들어선 곳이기도 한-그 무언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남수는 조금 더 큰 길가로 나가서 택시를 한 대 잡아탔다. 택시가 남수를 파주터미널에 내려준 것은 열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남수는 여러 개 매표구 가운데 유일하게 불이 켜진 곳으로 갔다.

삽화: 강동석 기자 tbag@snu.kr


“회창으루 갈아타는, 저, 개성행 버스 있습니까?”

“지금 회창 가는 건 없는데요. 개성 가셔서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셔야 돼요.”

매표원의 사무적인 태도는 박선일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그거라도 좋소. 주시오.”

매표원은 남수가 내민 서류를 받아 확인하고는 개성행 버스표를 건넸다. “3번 홈이요”라고 말하는 매표원의 목소리에는 남연방 사람들 특유의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차가 시동을 걸고 터미널을 나설 무렵 다시 비가 내렸다. 비는 오후의 안개처럼 부옇게 밤길을 가렸다. 헤드라이트도 별 소용이 없는지, 차는 매우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쯤 남수가 떠난 사실을 경희는 눈치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령이한테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남수는 이날따라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편치 않았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환절기가 되면서, 그게 아니라면 나이 때문에 쉽게 피로한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았다.

밖을 바라보는 남수의 시선이, 안개 사이로 부근 점포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불빛에 가 닿았다. 어둑한데 비까지 내려 명확치 않았던 그 불빛이 사창가의 것이라는 건, 터미널 근방 지리에 익숙한 남수도 금방 짐작을 했다. 불빛 너머로 거뭇한 여성의 육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잠시 안개 너머를 쳐다보던 남수는 이내 좌석 등받이를 뒤로 조절하고 잠을 청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개성에 도착하면 대합실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밤을 지샐 작정이었다.

차가 움직였고, 홍등가의 불빛은 실루엣과 함께 멀어져갔다. 개성 가는 버스가 속력을 내는 사이 평남제1닭공장 작업원 리남수는 침묵을 지키며, 재킷 속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안개같던 비는 점차 짙어지더니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버스를 삼켜버렸다.

흐릿한 밤길 위로 가을이 저물고 있었다.

1) 스물 내지 마흔 가구로 구성된 지역 행정단위 아래의 조직이다. 지역 인민위원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사상무장과 상호감시 같은 관리 감독 목적과 더불어, 지역 현안 등을 실제로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말단 통제 단위이다.
2) 모서리를 먹이다: 따돌림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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