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후보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위해
실효성 있는 공약 내놔야
국민들은 자신의 표가 스윙보트라는
생각으로 투표에 기여할 수 있기를

‘투표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믿는 술주정뱅이 아빠 ‘존슨’은 술에 취해 끝내 투표소에 가지 못한다. ‘투표는 시민의 의무’라고 믿는 딸은 투표를 꼭 하겠다고 약속했던 아빠가 투표소에 나타나지 않자 아빠의 이름으로 몰래 투표를 한다. 그리고 이 ‘한 표’는 기계 고장으로 인해 집계가 되지 않고, 모든 개표 결과 미국 대선 두 후보의 득표수는 동수가 된다. 결국 집계되지 않은 이 한 표의 재투표가 결정되고, 차기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게 될 ‘존슨’의 한 표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재투표까지 주어진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대선 후보들은 최후의 한 표를 얻기 위해 ‘존슨’의 관심사를 파헤치고 그것을 공약으로 내세운다.

2008년 미 대선을 앞두고 양 정당의 차별성 없는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정책혼선을 풍자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스윙보트’.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신념을 버려가면서까지 ‘존슨’이 무심코 내뱉은 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왜일까. 실제로 이번 18대 대선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이 내세운 대표적 정책들은 사실 후보의 이름만 가리면 누구의 정책인지 알기 어렵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상관없을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최근 ‘스윙보트’가 우리나라에서 개봉 몇 주 만에 철수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도 18대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몸소 이 영화의 스포일러를 자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표'를 행사하는 스윙보터들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어떠한 상황이나 이슈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에 선거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선거에 나온 후보나 정당들은 이들을 잡기 위한 정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다. 이미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여간해선 노선을 변경할 리도 없기 때문에 결국 스윙보터들을 많이 끌어오는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특히 투표율도 계속 낮아지고 무당파가 늘어가는 지금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스윙보터들의 한 표 한 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껏 정치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유권자들을 자신의 개인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17대 대선의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은 재정한계에 부딪혀 실효성을 의심받고, 동남권 신공항은 이미 백지화된 바 있지만 이번 18대 대선에서 또 다시 표심을 얻기 위한 공약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의미에서 표를 던지겠지만, 점점 더 많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외면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투표를 하지 않은 국민들이 모두 정치권에 불신을 느껴 투표를 거부한 것은 아니겠지만 국민의 대리인으로 뽑힌 정치인들의 대표성에 상처를 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 들어 의무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기권표를 투표용지에 기입할 수 있도록 해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그만큼 찍을만한 후보가 없어 투표를 거부하는 유권자들이 증가하면서 투표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학내에서 한창 진행 중인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선거마저도 최저 투표율 50%를 넘어야 성사된다는 규정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투표 거부로 학생 대표자에 대한 불신을 표시하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시 영화 ‘스윙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무심코 내뱉은 자신의 말이 미국의 미래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 ‘존슨’은 두 명의 대통령 후보에게 토론을 제의한다. 수많은 국민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와 엽서를 일일이 읽어가며 국민들이 원하는 대통령, 국민들이 그리는 미국의 미래를 두 후보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재투표를 앞둔 열흘 동안,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신념과 꿈을 버리고 제멋대로만 했던 자신이 미국의 적이었다고. 미국에는 말만 앞세우지 않는, 분별력이 있는 큰 인물이 필요할 뿐이라고.

지난 수개월 동안 정치혁신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한 후보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한다며 물러났다. 대선을 20여일 앞둔 지금, 이제 두 후보만이 남았다. 2012 대선, 한국 사회에 과연 큰 인물이 등장할 것인가. 국민들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다만 국민들의 이 결정적인 한 표가 헛되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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