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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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신문
  • 승인 2012.11.2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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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할머니

잡상 할머니
최지범

꼬부랑 할매, 물건을 팔고 있어.

무슨 물건인고 보니 자전거 탄 아이가 쳇바퀴같은 원형 트랙을 도는 장난감이야.

아이는 88년도의 모범소년처럼 빨간 긴팔에 짧은 파랑 반바지를 입고 있었어.

하나에 삼천원이라는데, 누가 그런 트렌디한 고급 장난감을 살지 궁금해졌어. 감히 누가 그런 물건을 탐할 수 있었을까?


내 주머니 속에는 구원의 티켓, 천국행 티켓이 몇 개 있었지만 어머니 아버지 수 분(分) 노력 남에게 주기는 아까워서 그냥 지나쳤어. 자전거 탄 아이가 내는 경쾌하고 고급스런 2bit 음악이 내 귀를 따갑게 간지럽혔지. 내가 막 지나치는데, 흐트러진 제복의 사내 둘 다가와서 그런 사치품은 여기서 팔 수 없다며 물건을 치우라고 했어.

할매는 듬성듬성한 개나리꽃 이빨 드러내며 제조일로부터 20년쯤 지난 1.8 m 높이의 젊은 로봇들에게 화를 냈어.

내 또래, 혹은 약간 위인 기계들은 그런 할머니에게 그녀 키만큼이나 낮은 목소리로 규칙을 설명했고, 당신 때문에 소요되는 연료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물건을 치우라고 했어.

할매는 서툰 발음으로 욕을 하다 결국에는 물건을 치웠고, 구겨진 두 개의 제복들은 그걸 옆에서 바라보며 할매가 증발하기를 기다렸어.

할매는 곧 증발했지만 그 냄새는 오래도록 남았어. 88년도 소년의 기계 음악 소리도 계단에 질척질척 흘렀어. 검은 셔츠에 검은 바지에 검은 머리에 검은 입술을 가진 두 로봇은 증발된 할머니를 부탄가스 마시듯 빨아들였어. 히죽 웃고 빨아들이고 내뱉고. 히죽 웃고 빨아들이고 내뱉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나는 토할 것만 같았어.

그냥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먼지 낀 사당역을 휘감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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