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제왕적일까? 아마 적지 않은 이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다. ‘제왕적’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권력을 자기 뜻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안정적인 과반 의석을 가졌고 우호적 언론 등 비교적 유리한 정치적 환경에서 출발했던 이명박 대통령만 봐도 그렇게 부르기는 무리일 것 같다. 임기 초부터 하고 싶어 했던 대운하 사업은 포기했고 대신 4대강 공사로 명칭을 바꿔 제한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김태호 국무총리 지명자, 정동기 감사원장 지명자 등 적지 않은 고위 공직자 후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낙마하면서 대통령의 인사권이 제약을 받았다. 더욱이 임기 말이 되면서부터는 대통령은 아예 관심의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다. 제왕적이라고 하기에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제약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현실적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처럼 개헌과 관련된 논의 때문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에 대해 지나치게 큰 기대감을 갖는 까닭이 선출된 대통령은 ‘뭐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당선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달라는 상호 모순적인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도한 기대감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후 ‘현실을 만나면서’ 서서히 불만과 배신감으로 변화하게 된다. 취임한 그 순간부터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해서 하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리고 임기 중반을 지나면서 선거 때 가졌던 기대감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적지 않은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불만은 모두 대통령의 탓으로 돌려지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가나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패배하자 ‘노무현 때문에 졌다’는 댓글이 달린 걸 본 적이 있다. 자조적이거나 해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축구 경기 결과를 보면서도 대통령의 책임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임기 초에 대통령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거나 슈퍼맨의 기대를 갖고 등장하게 되고 임기 말이 되면 좌절된 희망과 기대, 현실의 불만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적 제물로 바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망감은 다시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되고, 정치권 밖의 전혀 새로운 인물을 통해 유사한 기대와 희망을 찾으려는 태도까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북방정책, 군의 탈정치화, 대북관계의 개선, 탈권위주의 등 나름대로 그 시대의 요구를 수용했고 성과도 적지 않았지만, 국민은 이들을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바라보고 있다. 측근 비리, 정책 실패, 소통 부재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2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제왕적 힘’을 갖고 있다는 인식은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이제 곧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그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일거해 해결해 줄 수 있는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환상을 버리고, 짧은 임기동안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지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꼼꼼하게 가려내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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