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대학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먼저 시 쓰기에 뜻을 둔 모든 이들에게 한 번쯤 더 진지하게 시라는 양식 자체에 대해 고민해보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다른 양식으로 표현할 때 더 효과적인 내용이나 정서를 담고 있다면 그것은 굳이 시로 표현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시 쓰기의 출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할 소통 불능의 생경한 표현이나 어법으로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든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자족적인 글쓰기로 일관하는 태도를 버려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년에 워낙 실망을 했던 탓인지, 올해 응모작들이 조금 더 나아보인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하겠다. 물론 충분히 흡족한 수준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지나친 욕심을 삼간다면 그런대로 몇몇 작품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심사 과정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이들은 강민호(「갓뫼의 밤1」 등), 김동광(「노란 배고픔」 등), 김종하(「손이 탄 개」 등), 이종탁(「나무」 등), 전기화(「선택-우리들에게」 등), 전명석(「바다가 들어오는 공중 정원」 등), 최지범(「잡상 할머니」 등) 등이다. 이 가운데서 마지막까지 진지하게 거론되었던 것은 강민호, 김종하, 전명석, 최지범 등의 작품이었다.

먼저 강민호의 경우 관악을 배경으로 하여 동물들의 시선으로 그린 이색적인 작품들로 눈길을 모았다. 발상이 참신하고 대학생다운 순진함과 성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좋게 평가가 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언어의 낭비가 심하고 구조적으로 더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김종하의 경우는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강점이었다. 약간은 튀는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위트 있고 재치 있는 시어 사용이 돋보였으며, 그런 가운데 언어의 감칠맛을 느끼게 만드는 자신만의 매력이 부각되었다. 전명석의 경우는 완결된 언어적 조형미와 균형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알게 모르게 기성 시인들의 작품 경향을 흉내 내고 모방하는 듯한 어투와 문구가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다소 거슬렸다. 최지범의 경우는 질적으로 가장 고른 수준의 작품들을 제출한 점이 주목되었다. 성실하게 쓴 작품들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내적 응결력과 더불어 내면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호소력 있는 구성 능력 등이 관심을 끌었다.

최종적으로 최지범 군의 작품 「잡상 할머니」를 선택하게 된 것은 지금 현재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덜 정돈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자기 나름의 관점에서 주변의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풍경 속에서 삶의 진실을 읽어내고 발견하여 이를 인간적인 체취를 엿볼 수 있게 만드는 문구로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점에서, 꽤 괜찮은 관찰력과 상상력을 지닌 미완의 그릇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한갓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말고 정진, 또 정진하기를 바란다.

김유중 교수(국어국문학과) 장경렬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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