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심사평

제54회 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응모작 한 편을 심사하였다. 희곡과 시나리오 부문을 통틀어 한 편의 응모작밖에 없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웠다. 아무래도 취업난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학생들의 삶이 각박해졌음을 말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실, 희곡이나 시나리오나 배우의 연기를 염두에 두고,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 두 장르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영화의 설계도인 시나리오는 장소와 공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배우 없이도 공간의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연극의 밑그림인 희곡은 공간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불편하며 공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희곡은 전적으로 배우의 연기와 대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희곡의 대사는 더욱 절제되어야 하고 시간과 공간의 이동에는 짜임새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응모작 「잘가라, 파랑새」는 대사가 지나치게 산만하여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짐작하건대, 대학의 영화동아리를 배경으로 인간관계의 허위성과 관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을 표현한 것 같은데 무대도 자주 바뀌고 시간 순서도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어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시나리오에 더 가깝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각 장에 붙은 소제목은 연극에서는 표현할 길이 없고, 영화에서 문자 삽입 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영화적 수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차라리 시나리오로 써지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로 옮긴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대사의 산만함과 메시지의 모호함은 이 작품의 중대한 결함으로 남을 것 같다. 영화 동아리를 배경으로 삼은 것과 영화 고전에 대한 지식이 드러나는 대사로 보아 응모자는 단편영화 제작 등에 관심이 많은 학생으로 보인다. 이번 결과에 실망하지 말고, 희곡이든 시나리오든 꾸준히 습작을 지속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는 경지에 도달하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임호준 교수(서어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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