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없이 불친절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서울대 미술관 MoA에서는 지난 9일(수)부터 2월 17일까지 특별전 「No Comment」를 연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을 내세운 전시에는 최기창의 「Eye Contact」과 줄리아 포트의 「The Event」 등 다양한 회화, 인터렉티브, 설치, 영상 작품들이 선보인다.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낯설게 표현되며, 논리적인 해석을 지양한다. 「No Comment」라는 제목답게 친절한 설명은 작품 안팎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관객은 작품과 소통하며 작품에 대한 관객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게 된다.

최기창의 「Eye Contact」는 방 안에 마주보는 두 화면이 설치된 작품이다. 각 화면에는 눈을 부릅뜬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고 관객은 두 얼굴 사이에 놓이게 된다. 화면의 사람들은 순간 다른 얼굴로 대체된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얼굴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우선 당황한다. 변화하는 화면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한 사람이 눈을 감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다른 얼굴로 대체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작품은 임의의 두 사람이 눈싸움을 벌이는 상황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렸다고 해도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모르는 이와 경쟁해야만 하는 현대인의 삶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이 이와 같은 해석을 따라야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눈싸움이 모르는 사람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해석해도 된다. 작품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얼굴을 보여줄 뿐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기 때문이다.

「The Event」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내적인 혼란을 표현한 줄리아 포트의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서사를 역순으로 배열하고 각각의 장면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한다. 자칫 혼란스럽게 보이는 구성은 오히려 적극적인 해석과 풍부한 감상의 여지를 남긴다. 작품은 세계 종말 이후 두 남녀의 삶을 그렸지만 정작 세계가 종말을 고했다는 사실은 애니메이션 마지막에서야 알 수 있다. 또한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고 해도 개연성 있는 구성은 찾아볼 수 없다. 관객은 이렇게 뒤섞인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비현실적인 장면 구성이라는 요소 역시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이다. 캐릭터들의 몸이 뒤섞이고, 냉장고가 녹아내리는 장면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우울한 내레이션과 괴기한 발목 절단 장면과는 달리 동물의 모습을 한 캐릭터들은 앙증맞기까지 하다. 이처럼 3분 10초의 영상 안에는 상반되는 느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있으며 이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관객은 서로 다른 감상으로 전시장을 떠나게 된다.

전시는 ‘친절하고 쉬운 전달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불친절하고 혼란스러운 매체들을 이해할 능력이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을 보며 관객은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찮다며 뒤돌아서는 대신, 작품과 진지한 소통을 시도한다면 어느새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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