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겪으며 ‘유럽의 돼지들(PIGS)’로 묶이는 오명을 썼다. 이 국가들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했으나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고 재정적자가 급속히 악화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 채무가 결국 이 국가들을 ‘돼지’로 전락시킨 것이다. 이들을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 등 유로 중심국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도리어 이 중심국들도 수렁 속으로 빨려가는 모양새다. 이는 근 30년간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겪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재고(再考)의 여지가 마련됐다.

작년에 작고한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은 그의 인생 말년에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목격하고 다시 한 번 마르크스를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된 이래 마르크스의 사상은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져 왔기에 현 시점에서 다시 마르크스를 주목하자는 홉스봄의 말은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홉스봄은 그의 유작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서 자본주의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현재 상황을 진단하며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제시하는 마르크스 사상의 본질을 살핀다.

홉스봄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꼽힌다. 흔히 시대 3부작으로 불리는 대표 저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통해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세계로 뻗어갔는지 밝히며 그에 따라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돼 갔는지를 그려냈다. 또한 그는 대학 시절 입당한 영국공산당 당적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공산주의의 경직성을 비판하며 역사 연구에 있어서도 이념을 앞세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홉스봄의 저작은 이념적 지향을 초월해 두루 읽히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전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성장 메커니즘이 불황과 일시적 호황의 끊임없는 반복, 위기와 변화를 동시에 야기하는 경제적 성장, 국경을 초월해 세계화된 경제적 집중과 같은 내재적 모순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하며 국민국가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원료와 노동력을 싼 값에 약탈하고 국가가 부과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기도 하며 불황과 호황에 따라 무분별하게 투자와 고용을 조정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초국적 기업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불안정한 삶 속으로 내던지는 비극을 초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이미 마르크스에 의해 예견된, 세계화된 경제적 집중의 폐해들이다. 19세기 인물인 마르크스가 21세기의 세계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때문에 홉스봄은 마르크스의 예견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저서에서 마르크스의 사상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개관하기도 한다. 19세기, 20세기 각각의 마르크스주의가 세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면밀히 검토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마르크스주의가 미래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지 모색해보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홉스봄은 특유의 통찰력과 박식함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등장, 발전, 쇠퇴를 각 시대의 정치, 사회, 노동과 연관지어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다시 검토함으로써 홉스봄은 “20세기와 21세기 마르크스주의는 서로 다를 것”이라고 공언한다. 일반적으로 실패했다고 선언된 20세기 마르크스주의가 21세기에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공산주의가 도래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때문에 홉스봄은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에 의해 실현된 것으로 여겨지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가 본래의 마르크스 사상과는 다르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세기의 마르크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본래의 마르크스를 통해 새로운 21세기 마르크스를 창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에 홉스봄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사와 더불어 19세기 본래의 마르크스 사상을 설명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그들의 대표 저작인 『영국 노농계급의 상태(1845)』, 『공산당 선언(1848)』,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1858)』의 내용과 의의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를 설명함으로써 이후 등장한 마르크스 사상이 사회주의 사상의 틀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면밀히 검토한다.

홉스봄은 “자본주의는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말을 남겼다. 2008년 이후 경제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세계를 보면 이 말은 더욱 자명하게 들린다. 더 이상 자본주의를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완성된 체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물론 이 위기에 대한 최선의 답이 마르크스의 사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현재 자본주의의 모습을 정확히 예견했다는 홉스봄의 지적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마르크스의 냉철한 비판을 다시금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홉스봄의 통찰력에 주목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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