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강수정 활동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대통령 시대에 여성은 여전히 빈곤하고 억압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이 사회적인 영역에 있어서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등한 기회라는 것이 곧 평등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문화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기회균등을 단순히 평등으로 인식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이를테면 노예였던 흑인들이 갓 노예제에서 해방되었을 때 ‘대학입학 기회를 모든 인종에게 열어두었는데 왜 흑인은 대학에 들어오는 비율이 1%도 안 되는가’라고 말하며 인종 간의 타고난 우열성을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일 여기서 예로든 대학 입학기준이 백인 중산층 규범을 토대로 한 교육과정의 시험제도가 아닌 삽을 하나씩 주고 누가 더 구덩이를 잘 파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백인들보다 흑인들이 더 많이 합격했을 것이다. 관건은 사회를 표피만 보지 않고 큰 그림을 보듯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를 올곧게 인식한다면 입학시험제도와 취업제도가 누구의 문화와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보고 그 긴밀성이 떨어지는 그룹은 사회적 약자로 보고 도와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제도를 바꾸던가. 이를테면 학교시험을 길거리 농구시합으로 대체한다면 백인과 흑인의 학업성취도의 차이가 과연 지금과 같을까?

여성은 오랫동안 가부장제 내에서 돌봄의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소규모 사회 속에서의 여성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반면 남성 중심성이 아성을 이루어 온 정치 사회적 영역에서 여성은 아직 갓 뭍에 올라온 거북이 같은 존재이다. 바다에서는 자유롭게 헤엄치고 다른 생명들과도 잘 어울리며 살던 바다거북이지만 헤엄칠 공간도 없고 적당히 짠 바닷물도 없는 육지에서 거북이들은 토끼와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규정되며 산꼭대기까지 달리기시합을 강요당하고 있다. 거북이는 기가 막히다. 이미 뭍에서 살기로 한 이상 이 경주를 포기할 수도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제 오히려 거북이는 뭍에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틀을 요구한다. 거북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거북이 생리에 맞는 풀장을 지어 적당히 짠물을 채워달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거북이는 점점 진화해 갈 것이다. 뭍에서 바닷물 풀장 없이도 살 수 있도록 말이다(물론 거북이와 토끼의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인데 이 글에선 남과 여의 사회권 영역의 힘의 차이 젠더를 상징함은 감안하여 들어주시길). 아직은 풀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리 거북이들에게 어떤 지도자가 필요할까?

‘날 때부터 비서토끼가 등에 업고 다녀서 뭍에서 거북이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등껍질만 거북이’인 존재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가난과 폭력에 힘겨워하는 거북이들에겐 큰 의미가 없다. 무늬만 거북이인 지도자는 토끼들의 대변인 노릇을 할 뿐 진정 거북이의 삶의 질을 바꾸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북이 스스로 풀장을 짓는 수밖에….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제29회 한국여성대회를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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