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8년간 교황 자리를 지켜온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퇴위했다. 종신 임기가 보장된 교황이 임기 중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은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처음이다. 지난 수백년간 유례가 없던 일이라 그런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교황청으로 쏠리고 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 역사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교황이 퇴위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사퇴한 첫 교황으로 알려진 폰시아노(재위기간, 230~235)는 권력투쟁을 피하고 교회에 대한 박해를 막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으며, 요한 18세(1004~1009)는 귀족 가문의 간섭에 지쳐 사퇴하고 수도원에서 은둔했다. 한편 7세기 중엽 마르티노 1세는 비잔틴 제국 황제에게서 독립하려다가 결국 해임돼 콘스탄티노플로 끌려가 재판을 받은 후 공개 태형을 당했고, 크림 지방으로 귀양 가 고문을 받고 죽었다. 10세기 초반부터 11세기 중엽까지 가톨릭 교단에는 타락한 로마 귀족들의 당쟁에 휩쓸린 나머지 44명의 교황과 비합법 교황인 대립교황이 줄을 잇는데, 그 중 9명은 살해됐고 9명은 해임됐으며 7명은 추방당했다. 한편 비도덕적인 교황의 사례도 볼 수 있는데, 요한 12세는 어느 유부녀의 침대 속에 있다가 습격을 받아 죽었으며, 베네딕토 9세는 은(銀) 1000달란트를 받고 자신의 대부인 그레고리오 6세에게 교황직을 팔아버리기도 했다. 이보다 더 끔찍한 사례로는 111대 교황 포르모소에 대한 사후 재판을 들 수 있다. 그가 죽은 지 9개월 뒤인 897년 1월, 후임자인 스테파노 6세가 공의회를 개최했고, 포르모소의 정적들은 그의 시신을 파내어 교황의 옷을 입히고 교황 자리에 앉혀 재판을 열었다. 그는 야심과 거짓맹세죄로 기소됐고 재판 결과 교황 즉위는 무효가 됐고 축성할 때 사용했던 손가락 3개도 잘렸다. 그 후 시신은 로마 거리에서 끌려 다니다가 테베레강에 던져졌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태의 밑바닥에는 공통적으로 권력 투쟁이 깔려 있다. 세속 권력과의 결탁·갈등, 교회 내부의 알력 등이 뒤얽혀 로마 가톨릭 교회사에 오점을 남겼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퇴임이 건강 악화 때문인 것으로 밝혔으나, 사제들의 성추행 문제, 금융비리, 교황 개인문서 유출 등으로 얼룩진 지난 8년의 재위기간을 돌이켜보면 그의 퇴위를 둘러싼 의혹이 쉽사리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오죽했으면 교황 본인도 고난에 직면했던 순간들을 “신께서 주무시는” 시간이라고 표현했을까.


어찌 됐든 곧 열리게 될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것이다. ‘열쇠로 잠겨진’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온 콘클라베는 추기경들을 방에 가두고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못 나오게 하는 관행을 일컫는다. 초기 교회 역사를 보면 추기경들이 심하게 갈라져서 교황을 결정할 때까지 몇 달, 심지어는 몇 년을 논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인지 서두르기를 강요하는 뜻으로 추기경들을 방에 가두게 됐다고 한다. 불현듯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우리 국회에도 가끔은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주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정부조직개편안이 처리되지 못한 상황이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장준영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