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안개를 뚫는 두 개의 전조등
‘말’의 안개를 뚫는 두 개의 전조등
  • 오천석 기자
  • 승인 2013.03.02 2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학 중 새로 나온 책]

침묵의 미래
김애란 외/문학사상사
그 어느 때보다 말이 흘러넘치는 시대다. 움직이는 영상이든 정적인 텍스트든 매체를 막론하고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말과 마주한다. 그리고 또 말을 내뱉는다.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는 우리 시대의 대화들, 그러나 누군가는 웃고 떠드는 와중에 언뜻언뜻 섬뜩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내가 분명 말했다고 생각한 말이 상대방에게는 가닿지 않는 그런 상황이 그렇다. 말은 편재하지만 그만큼 끊임없이 비틀어지고 왜곡되는 언어의 비극.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 『신화론』에서 이러한 언어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특수하고 역사적인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끊임없이 보편화, 자연화 시키려는 부르주아의 담론적 노력을 손꼽았다. 2012년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은 두 소설, 김숨의 「그 밤의 경숙」과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먼저 201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김숨의 「그 밤의 경숙」은 한 가족이 주말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겪는 일련의 일들을 긴박한 필체로 그려낸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경숙’은 가족과 함께 귀가하던 어느 일요일 밤 한 퀵 오토바이와 사고가 날 뻔 하면서 한국의 일반적인 4인 가족의 균열과 마주한다. 얼굴조차 알 수 없는 ‘퀵 배달원’과의 해결되지 않는 언쟁을 시작으로 그녀의 가족은 일상에 산재하는 소통의 균열과 부조리의 세계를 통과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경숙과 가족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익명의 폭력으로 인해 후기 산업사회의 병증이 등장인물 간의 병리적인 대화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편 대신 ‘퀵 배달원’과 대화를 시도한 경숙은 그의 답변 대신 퀵 배달원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얼굴 없고 일방적인 목소리들만을 들을 뿐이며, 이러한 단절의 경험은 경숙이 이미 수많은 단절로 에워싸인 상태라는 걸 재확인 시켜준다. 심사위원 이승우(소설가)에 따르면 “이름과 번호를 헷갈려하고,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말을 맥락 없이 툭툭 내뱉”는 경숙과 등장인물들은 결코 “허구의 인물로 치부할 수 없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일상의 배후에는 언제나 비일상의 그림자가 있다는 공식을 작품 세계를 통틀어 집요하게 증명하고자 한 작가 김숨은 불안한 상황을 위태롭게 전개하는 문체로 가정에 대한 부르주아적 환상을 깸으로써 그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두 작가는 말을 작품의 공통분모로 삼되 김숨이 「그 밤의 경숙」에서 기존 소설 작법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가족 간의 소통이 마모돼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면, 작가 김애란은 ‘언어’를 주인공으로 삼아 말이 어떻게 기만되는지에 대해 좀 더 원론적인 ‘돌직구’를 던졌다. 그에게 201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안겨준 「침묵의 미래」는 독특하게도 ‘언어’ 자체를 화자로 삼아 언어가 본래 가치를 박탈당한 채 자본 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을 우화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중앙’이 관광 수입을 기대해 설립한 ‘소수언어박물관’에 납치되듯 고용됐던 소수 언어 화자가 사망하며 발생한 언어의 에너지이다. 마치 ‘언어학 개론’ 교재의 서론처럼 읽히는 소설의 첫 부분인 화자의 자기소개 이후에는 특정한 사건의 전개 없이 담담히 ‘소수언어박물관’에 있었던 여러 일들에 대해 말한다. 바로 ‘중앙’이 사냥하듯 수집한 소수 언어 화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동시에 그들이 발화하던 언어가 어떻게 소멸했는지에 대한 증언이다. 언어의 영혼인 화자가 ‘소수언어박물관’의 ‘분수’를 작동시키기 위한 동력으로서 또 한 번의 죽음을 겪게되는 마지막 부분에서 언어를 대상으로 자행된 야만이 다시 한번 폭로된다.

이번 수상이 김애란 작가에게, 또 한국 문학계에 특별한 이유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인 윤대녕(소설가)이 “뜻밖의 행보”라 지적하듯 「침묵의 미래」가 결코 익숙한 서사법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시작됐기에 이야기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공감되기 쉬웠던 『달려라아비』, 『침이 고인다』와 다르게 이번 작품에서는 과감히 관념적 화자가 설정됐다. 이는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험적인 서사 방식은 삶의 표층에 머무르는 독서로부터 벗어나 언어가 현대 사회 내에서 어떻게 대상화되는지에대한 원론적인 사유를 가능케 했다는 의의가 있다.

롤랑 바르트가 신랄하게 지적했듯 현대 사회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말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심지어 쉽게 ‘화목함’이란 가치와 결부되는 가족의 개념도 부르주아적 담론에 의해 ‘조성된’ 이미지인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기저에 깐 김숨의 「그 밤의 경숙」, 그리고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는 이러한 ‘현대의 신화’들을 탈신화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위 말하는 ‘가족적’ 분위기는커녕 서로의 단절만 확인시키는 가족 간의 소통, 혹은 언어가 어떻게 자본주의에 의해 ‘자원’으로서 대상화되는지를 폭로한 두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말의 환영을 뚫는 전조등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