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정치학과 석사과정

지난 25일, 새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민주화 이전 유신체제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던 그녀가, 민주화 이후 성립된 제6공화국의 6번째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것이다. 취임식 중계에서 그녀가 청와대로 들어가는 걸 보며,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 곳에 다시 돌아가면서 그녀가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 궁금해졌다. 분명 이 연상은 나만의 독특한 감상이 아니었을 것이나, 동시에 나는 그러한 연상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며 자신의 국정 전망을 밝혔다. 이런 어휘 선택이 의도적이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녀가 어쩔 수 없이 기대고 있는 어떤 집단적 기억의 한 측면에서 파생된 것이란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를 ‘독재자의 딸’로 보는 사람들에게나, 새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보는 사람들에게나, 그녀는 항상 그녀 자신으로서보단 그녀의 아버지의 그림자로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녀가 청와대로 들어가는 순간 그녀의 젊은 시절을 연상한 나의 경우도, 그녀가 현충탑에 참배할 때 그것이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것임을 구태여 강조하던 TV 앵커의 경우도,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독재와 경제성장이 공존했던 시기에 대한 어떤 기억이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그녀 자신 역시 이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끈적끈적한 기억의 침전물은 취임사에서까지 저렇게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침전된 기억과 별개로 현실은 머무름 없이 흘러간다. 그녀는 분명 과거 독재자의 딸이었으나 현재는 독재자가 아니며, 그녀의 취임이 소위 말하는 87년 체제의 붕괴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예전의 독재자와 혈연관계에 있던 사람이 공직을 맡는다는 이유만으로 붕괴될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그 불가역적인 공고화를 실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분명 그녀의 말마따나 과거 우리는 '하면 된다는 국민의 강한 의지와 저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현재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경제의 너무도 많은 조건이 바뀌었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세계경제 내적 위상이 바뀌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은 1970년대가 아니고, 그녀는 박정희가 아니며, 이 나라의 장래의 경제성장은 결코 ‘기적’이 아니다. 헤겔이 그의 『역사철학강의』에서 말했듯, “퇴색한 과거의 회상 따위는 현재의 생활 태도와 자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기억과 현실의 괴리에서 나오는 착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지나간 일이지만, 어찌 보면 대선 기간 내내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을 내세우며 선거전에 임했던 야권이 그 산증인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제 과거의 적이 공고화된 민주화 체제 내에 편입되어 적응을 완료했다는,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 착오는 그저 한 정치세력의 발목을 잡아챘을 뿐이지만, ‘한강의 기적’에 대한 국가원수의 기억이나 과거 경제성장 시기에 대한 국민 전체의 기억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발목을 잡아챌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다. 어쩌면 이 말은 역사 그 자체의 법칙이 아니라, 착시에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슬랩스틱 스타일의 패턴을 지칭하는 건 아닐까. 과연 이 땅의 현대사는 반복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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