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르는 산은 그 나름의 기쁨을 준다. 툭툭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를 따라 산 정상쯤 오르니 구름의 품에 푹 안기는 기분이다. 흘러가는 구름이 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올해도 이렇게 제자들과의 산행으로 5월의 한가운데 날을 맞았다. 학생 때는 관악산 한 번 올라가보지 않았었는데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을 보면 내가 늙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산해서 산행 멤버들은 영화를 한 편(이 글의 제목은 그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임) 보고 모두 저녁식사 장소로 향했다.

 

 

보건대학원은 5월 초에 신입생들이 지도교수를 정하기 때문에 우리 연구실에서는 5월 중순에 스승의 날 겸 신입생환영회 모임을 한다. 축하케이크에 촛불이 8개가 있는 걸 보고 물어보니 내가 우리 학교에 온 지 8년이 되어 이번이 8번째 맞는 스승의 날이라 한다. 8년 전의 모임을 떠올려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때는 단촐한 모임이었는데 이제는 저녁을 먹고, 노래방, 나아가 3, 4차를 마친 새벽 1시까지도 15명의 전사들이 남아있지 않은가?

 

 

참석하는 숫자가 해마다 늘어도 우리 연구실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다양한 학부 배경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욱 즐겁다. 나의 지도 학생들은 나처럼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의학, 간호학, 약학, 한의학 등 학부 배경이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있다. 또한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생각 역시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부터 민간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까지 다양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아끼며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시작하면 헤어지기를 싫어한다. ‘어떻게’라는 방법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 그리고 정책적 요인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성은 보건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흔히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의료만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생활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 소득 수준, 영양, 노동, 실업, 환경 등 많은 요인들이 우리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건강하기 위해서는 개인, 조직, 사회, 정부 차원의 다양한 요인들을 이해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웍을 통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보건분야의 전문가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핵심적인 역량으로 갖추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성숙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나는 믿는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없는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아껴주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나는 보건학과 보건분야의 밝은 미래를 본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범생이 제자도 든든하지만 톡톡 튀는 재치로 가끔은 당돌하기도 한 제자 역시 정이 간다. 내 세대가 가졌던 획일적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표현하는 젊음을 볼 때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여러분은 나의 미래다, 아니 더 나아가 현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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